[오피니언] 개념 배우

탈북자 북송 반대 시위에 나선 배우 차인표를 선거철에 보수 표 결집시키는 개념 없는 연예인으로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의 개념은 보수, 진보를 떠나 휴머니즘에 입각해 있다. 2006년 구호단체에 등을 떠밀려 인도를 방문할 때 그는 비행기 일등석을 타고 거들먹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 빈민촌의 일곱 살 어린이가 악수하자며 내민 손을 잡는 순간 삶과 가치관이 변해 세계의 가난한 이웃을 돕기로 결심했다. 이후 그의 여행지는 미국이나 호주에서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우간다로 바뀌었다. 그를 개념 배우로 돋보이게 하는 건 일관된 진정성이다.

2006년에 할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수단에 간 그 해부터 다르푸르 학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나섰다. 주요 국가원수 에게 서한을 보내 수단의 분리 독립 필요성을 호소했고, 브래드 피트 등 동료 배우들과 기금을 모았다. 위성으로 집단 매장지를 찾아내 수단 정부군의 민간인 학살을 증언했다. 클루니의 한결같은 마음은 지난해 남수단공화국의 탄생으로 결실을 봤다.

애플 중국 하청공장의 착취를 고발한 1인극으로 유명세를 탄 미국 배우 마이크 데이지는 지난 1월 라디오에 출연해 자신이 직접 목격했다며 화학약품에 중독된 노동자의 참상을 전했다. 개념 배우를 자처했으나 그의 폭로는 대부분 거짓과 풍문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는 나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배우다. 사실과 허구를 섞어 스토리를 만든다. 내 이야기는 총체적 진실을 추구한다며 버텼다. 언론의 진실 보도가 애플에 항의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반발하자 폭로 9일 만인 25일 블로그에 사과문을 올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한진중공업 사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등 사회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연예인들도 있다. 연예인도 사회적 이슈에 대해 찬반 의견을 발표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앞에서는 겸허해야 한다. 사실은 신성하고 의견은 자유롭다는 말이 있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먹느니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먹겠다고 하던 연예인은 지금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데이지의 사과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내 이야기를 세상이 듣게 하려는 열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진실이 아닌 것들이 내 입에서 나왔다. 이 형 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