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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어린이집 참 좋은데 야근 걸린 엄마는 조마조마

직장어린이집 참 좋은데 야근 걸린 엄마는 조마조마

Posted July. 02, 201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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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오후 4시 20분 서울시내의 한 대기업 본사 2층. 이곳 사내() 직장 어린이집 앞에 놓인 작은 소파는 할머니들로 꽉 차 있었다. 매일 이 무렵이면 이 어린이집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 시간까지 도무지 퇴근할 수 없는 부모들을 대신해 손자, 손녀를 데리러 오는 것이다.

맞벌이하는 딸의 부탁으로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이곳까지 네 살배기 손녀를 데리러 왔다는 최모 씨(60여)는 아이가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어린이집에 있을 수 있게 하거나 아예 집 근처 어린이집에 다니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첫 번째 성공의 열쇠-운영 시간

최근 정부는 일, 가정 양립과 여성 일자리 확충을 위한 직장 어린이집 확대 방안을 발표하면서 어린이집 관련 규제 완화에 나섰다.

어린 자녀를 둔 직장인들은 이를 반가워하면서도 아쉽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직장 어린이집 성공의 열쇠인 운영 시간과 장소에 대한 논의가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조건 어린이집 수만 늘리는 것보다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위의 사례처럼 직장 어린이집이 있어도 운영 시간이 짧으면 누군가가 아이를 데리러 와야 하는 불편함이 생기고, 지역 기반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아이들이 매일 부모의 직장까지 먼 길을 오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부모들은 직장 어린이집이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필요한 공간이 되려면 최소 오후 10시까지는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오후 67시면 문을 닫는다. A 기업에 다니는 임모 씨(31여)는 오후 5시면 다들 아이들을 집에 데려가는 분위기라 혹시 우리 아이만 늦게까지 남아 눈치를 볼까봐 늘 신경 쓰인다며 적어도 오후 5시 반에는 내가 직접, 또는 친정 엄마에게 부탁해 아이를 데려가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올해 3월부터 운영 중인 경기 시흥시 정왕 보듬이나눔이어린이집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회원사 기금을 모아 시흥시에 기부한 이 어린이집은 야간 교대근무와 밤샘 야근이 많은 공단 근로자의 업무 특성에 맞춰 24시간 운영한다. 천숙향 원장은 산업단지는 밤늦은 시간까지 야근하거나 주야 맞교대로 일하는 근로자가 많고 특히 여성인력 비중이 높아 이를 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직원인 이규원 씨(35)는 어린이집이 대개 오후 6시면 끝나다 보니 퇴근이 늦을 때마다 아이를 조금 더 맡아달라고 전화하는 게 눈치가 보였다며 이곳은 밤늦게까지 믿고 맡길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시화공단의 직물원단 수출업체에 다니는 원정미 씨(31여)도 다섯 살 된 아들을 이곳에 맡긴다. 그는 일이 오후 11시 넘어 끝날 때가 많아 집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두 번째 성공의 키-장소

직장 어린이집이 성공하기 위한 두 번째 열쇠는 어린이집이 위치한 장소다. 직원들이 모두 회사 주변에 모여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본사에 어린이집을 만드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실제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는 원아들의 중도 이탈률은 일반 어린이집에 비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력적 한계로 인해 등원을 포기하는 어린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역 기반의 어린이집이 필요한 이유다.

LG전자의 한 직원은 서울 여의도 본사에 어린이집이 있지만 집이 멀어 아이를 아침 일찍 깨워 데려오고 다시 집에 데려가는 게 불가능해 혜택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SK에 다니는 이모 씨(34여)도 분당에 살다가 아이를 본사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서울 종로구 효자동으로 이사했다며 나처럼 이사를 못하면 그냥 직장 어린이집 이용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역을 기반으로 직장 내 어린이집을 설립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특히 이를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운영해 회사 직원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이 경우 기업은 어린이집 운영에 대한 부담을 덜고 어린이집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아미어린이집이 이를 적용한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SK하이닉스는 2010년 7월 경기도 및 이천시와 함께 어린이집을 열었다. SK하이닉스가 유휴 대지 일부를 무상으로 기증하고 이곳에 이천시가 어린이집을 세웠다. 특히 하이닉스 사원뿐 아니라 인근 협력업체 직원과 지역 주민의 자녀 모두를 대상으로 개방한 것이 이 어린이집의 강점이다. 지역 내에 산업단지가 많은 것을 감안해 산업단지 근무 형태에 맞춰 어린이집도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4조 3교대로 운영하고 있다.

최현주 원장은 어린이집이 집과 직장에서 모두 가까워 부모와 아이들이 다 만족한다며 덕분에 정원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딸(3)과 아들(2)을 모두 이 어린이집에 보내는 SK하이닉스 직원 임혜림 씨(26여)는 SK하이닉스뿐 아니라 주변에 산업단지 근로자가 워낙 많아 아미어린이집 대기자도 매우 많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SK하이닉스 직원인 박모 씨(27여)도 첫딸에 이어 둘째도 태어나자마자 아미어린이집 대기명단에 올려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SK그룹은 아미어린이집이 성공적이라 평가하고 10월까지 SK하이닉스 사유 대지에 2차 24시간 국공립 어린이집을 추가 완공할 계획이다. SK 관계자는 앞으로 신사옥을 짓거나 사옥 이전 계획이 있는 계열사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직장보육시설 기준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지현 기자이천=정지영 기자시흥=박창규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