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철이면 검찰이나 경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소란스러운 곳이 외교부다. 중동,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오지로 길게는 3년까지 가는 일이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는 게 외교부 사람들 이야기다. 때에 따라선 기러기가 되기도 하고 자녀들 교육상 민감한 시기에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인사가 나면 낭패감이 든다는 것. 게다가 초기 공관 근무를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평생의 근무 경로가 좌우될 수도 있으니 있는 연줄, 없는 빽이라도 동원하고 싶어진단다. 외교부는 2189명 정원 중 1200여 명(54.8%)이 해외에서 근무한다.
잘나가는 워싱턴 스쿨 차이나 스쿨 저팬 스쿨에 편입되면 잘나갈 확률이 높아진다. 비슷한 경로를 밟아 주요 공관장이 되거나 요직에 있는 선배 외교관들이 끌어주기 때문이다. 서로의 집 젓가락 숫자까지 훤히 꿸 정도로 동고동락한 외교관들 간의 패밀리 의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여기에 학연까지 더해지면 쓰나미에도 끊어지지 않을 초특급 동아줄을 갖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외교부 내 서울고 인맥은 고대교우회, 해병대전우회, 호남향우회가 울고 갈 정도의 끈끈함을 과시했다. 유명환 장관, 신각수 차관, 이규형 주중 대사, 김영선 대변인(현 인도네시아 대사), 조현동 북핵외교기획단장이 요직을 차지하면서 외교부에서는 서울랜드란 말이 회자()됐다. 현 정부는 경기고 판이다. 윤병세 장관, 김규현 차관, 안호영 주미 대사, 오준 주유엔 대사, 조태용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고교 동문이다. 물론 실력도 없이 연줄만으로 지금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뜻은 아니다.
32년 외교관 생활을 한 류광철 주짐바브웨 대사(59)가 최근 자신의 저서에서 외교부는 똑똑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조직이라며 정실 인사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용기를 낸 내부 비판 같지만 정년을 수개월 앞둔 시점이라 썩 개운치는 않다. 한 번도 대사를 못하고 퇴직하는 사람도 꽤 있는 마당에 험지라도 두 번이나 대사를 했으면 천수를 누린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오는데.
하 태 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