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주변의 건의를 받으면 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러나 그 전에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해 왔다. 정상회담을 했는데도 일본이 그릇된 역사인식에 바탕을 둔 망언()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는 것.
청와대를 포함한 외교라인은 일본의 외교당국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작업을 물밑에서 진행 중이다. 목표는 3월 24일부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다. 청와대 관계자는 6일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포럼 이전에도 한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물밑 접촉은 있었지만 다보스포럼보다는 3월 핵안보정상회의 때 만남을 염두에 두고 두루 가능성을 타진했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일본에 대해 특정 안건의 해결을 조건으로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피해배상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다룰 의제의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물밑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다른 관계자는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가 55명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고령()을 감안하면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박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지대한 만큼 일본이 이 문제에서 진정성을 보인다면 정상회담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일본 측과 논의 과정에서 제기됐던 노다 요시히코() 당시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사죄하고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찾아가 이 뜻을 전하는 식의 방안 등도 아이디어로 검토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당분간 일본을 지나치게 자극해 한일 간 대립구도를 심화시키는 일은 자제할 방침이다. 위안부 문제도 한일 간의 대립 시각이 아닌 인류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 접근해 국제사회의 지지 여론을 확산시키는 쪽이 낫다고 판단한다. 프랑스 앙굴렘 만화제에서 우리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인 이슈가 아닌 보편적인 여성인권 문제로 접근해 호평을 받은 반면에 일본은 이를 정치적으로 대응하려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 좋은 예. 일본이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후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수세에 몰려 있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인식이다.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