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71사진) 전 일본 총리의 극장 정치는 더이상 통하지 않았다. 패전 후 3번째로 긴 5년5개월 동안 총리를 지낸 그는 화려한 연기를 하듯 정치를 해 극장 정치란 별칭을 얻었다. 하지만 9일 치러진 일본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그가 총력을 기울여 지지한 호소카와 모리히로(76) 전 총리 후보는 3위에 그쳤다. 고이즈미 돌풍은 왜 불지 않은 것일까.
고이즈미 전 총리의 정치 스타일은 원 이슈 돌파형이다. 선거전에서 한 가지 테마를 집중적으로 내걸어 국민적 지지를 얻는 식이다. 2005년 9월 총선 때 그는 연설의 81%를 우정 민영화에 집중시키며 개헌 가능한 의석수를 넘어서는 기록적인 대승(327석)을 거뒀다. 이번 도지사 선거에선 연설의 85%를 탈()원전에 쏟았다.
하지만 도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원전이 아니었다. 도쿄 도 안에 원전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도민들은 원전을 시급한 이슈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간사장은 9일 기자회견에서 자민당이 전폭적으로 지지한 마스조에 요이치(65) 전 후생노동상의 당선 이유에 대해 경제나 의료 복지 등에 대한 호소를 (유권자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이해했다고 자평했다.
신선미도 떨어졌다. 호소카와-고이즈미 조합은 전직 총리를 지낸 거물들의 연합이었다. 하지만 70대 거물은 젊은 세대에게 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사히신문 출구조사 결과 호소카와 후보는 20대, 30대에서 각각 11%, 15%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마스조에, 우쓰노미야 겐지(67) 전 일본변호사연합회장, 다모가미 도시오(65) 전 항공막료장(공군참모총장)을 포함한 주요 후보 4명 중에서 최하위였다.
하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자신의 도전이 끝나지 않았음을 선언했다. 9일 자필로 발표한 소감문에서 아쉬운 결과지만 앞으로도 원전 제로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미력하나마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아베 신조(60) 총리가 직접 나서 유세를 벌일 정도로 전폭 지지한 마스조에 후보가 도쿄 도지사로 당선되면서 아베 정권의 원전 재가동, 집단적 자위권 허용 등 정책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일본 정부는 원전 재가동 방침을 담은 중장기에너지정책 지침 에너지 기본계획을 이르면 이번 달 안에 내각회의에서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니치신문은 에너지기본계획을 1월에 확정하려고 했으나 도쿄 도지사 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보류했다고 10일 보도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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