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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의 여신인가 푸틴의 인형인가

Posted March. 31, 2014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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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의 여신이여, 내 마음도 합병해 달라!

러시아에 합병된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의 미녀 검사인 나탈리야 포클론스카야(34)가 연일 화제를 모으며 글로벌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다.

이달 11일 크림공화국의 검찰청 검사장으로 임명된 포클론스카야의 첫 기자회견 동영상은 금세 17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푸른색 제복에 요정처럼 앳돼 보이는 미소녀 같은 얼굴, 매혹적인 금발머리, 접시처럼 커다란 눈동자는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여주인공 전투 준비를 막 마친 여전사(BBC)라는 찬사를 받기 시작했다. 가와이(귀엽다)를 외치는 일본 누리꾼들이 포클론스카야를 모델로 그린 캐릭터 만화작품 수십 점을 올려놓자 그의 캐릭터는 트위터를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12년간 조직폭력 전담 검사로 일했던 포클론스카야는 지난달 25일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축출한 야당 시위대를 가리켜 깡패들이 길거리에서 활보하는 나라에서 사는 게 부끄럽다며 사직서를 제출한 뒤 고향인 크림공화국으로 낙향했다. 크림공화국 검찰조직에서 최고위직으로 초고속 승진한 그는 같은 날 첫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를 향해 반헌법적 쿠데타 세력이 나치즘을 선동하고 있다며 강펀치를 날렸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옛 내무부 산하 특수부대 베르쿠트 요원들을 탄압한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일본에서 시작된 열광적인 팬덤은 러시아와 유럽에서도 급증하는 추세다. 러시아의 한 작곡가는 귀여운 나타샤라는 노래에서 검사인 포클론스카야에게 제발 나를 소환하라, 나를 심문해 달라고 애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27일 포클론스카야를 국가반역과 권력찬탈 공모 혐의로 지명수배를 내린 데 대해서도 누리꾼들은 내 마음속 그녀를 나도 수배한다고 패러디했다. G4U라는 게임회사는 그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력이 짧은 30대 여검사의 검사장 발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치적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합병해 국제적으로 눈총을 받고 있는 러시아가 비난 여론을 누그러뜨리려 미녀를 내세웠다는 것.

이 전략은 실제로 먹히고 있다. 일부 누리꾼은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를 무조건 지지한다 이번 싸움은 내게도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됐다. 가자 크림으로!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영국의 한 블로거는 그녀는 포르노 스타가 아니라 노련한 솜씨를 가진 정치인이라며 얼굴이 예쁘다고 우크라이나의 소름끼치는 비극적 상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페이스북에선 그의 이름을 사칭한 가짜 계정도 만들어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할리우드 스타인) 패리스 힐턴으로 상징되는 인스턴트 셀리브리티 현상이라며 안 그래도 알 수 없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점점 더 기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평했다.

포클론스카야는 이런 인기에 놀라는 표정이다. 그는 러시아 TV채널 NTV와의 인터뷰에서 한 번도 소셜미디어를 사용해본 적이 없다. 인터넷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포켓몬 같은 존재가 아니다. 현재 가장 큰 국제분쟁과 관련된 사건을 총괄 지휘하는 검사장으로서 일의 성과로 평가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