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수습을 위해 지방예산과 소방방재청 예산을 총괄해할 기획재정부 행정예산심의관은 2월부터 공석()이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인 규제개혁 실무를 맡을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 역시 5개월 이상 비어 있다. 정부 각 부처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국장급 이상 자리 가운데 51곳이 공석이어서 국정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기재부가 매년 6월말 발표하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의 일정도 잡지 못해 악화일로로 치닫는 한국경제가 경기 진작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역대 정권을 돌아봐도 정부 고위직이 이렇게 많이 오랫동안 비었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사 공백이 길어진 것은 4월 세월호 참사로 인해 모든 인사가 돌연 중단된 탓도 있다. 그 후 국정쇄신을 위한 인적쇄신 방침이 나왔지만 국무총리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로 장관 임명이 늦어지면서 국장급 인사도 순연됐다.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이 화두가 되면서 고위 공무원들을 산하기관에 내려 보내지 못하게 되자 각 부처에서 인사에 손을 놔버린 측면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청와대가 국장급 인사까지 간여하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전현직 장관들과 공공기관장, 새누리당 의원들은 청와대에서 작년부터 각 부처의 국장급 인사를 직접 챙겼다고 전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 분야 국장급을 교차 인사하려다 청와대의 재가를 받느라 한 달 이상 더 걸렸고, 기재부도 국장급들을 전보하는데 청와대를 거쳐야 했다. 청와대 OK를 받기까지 한달은 짧은 편이고 두 달, 세 달 걸리는 경우도 많다. 세 명의 후보를 올렸다가 청와대가 점지한 후보가 없어 다시 추가해 올렸다는 증언도 잇따른다. 청와대가 정무직인 장차관을 넘어 실무직인 국장급 인사에까지 개입한 것은 과거에 없던 일이다.
오래 비워도 괜찮은 자리라면 차라리 없애는 건 어떤가. 청와대가 꽂는 인사가 능력대로가 아니라 학연 지연에 따른 봐주기 인사라면 국정 농단이다. 국과장 인사도 뜻대로 못하는 허수아비 장관이 부처를 장악하고 소신을 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책임장관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국정쇄신에 1분 1초가 아깝다면 대통령과 청와대는 장관들에게 인사의 권한과 책임을 돌려줘야 한다. 그러고 나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총리와 장관감을 고르는 본연의 인사나 똑바로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