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라기보다 10대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여기에 왔다.
20일(현지 시간) 오전 10대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 군 총격 사망 사건으로 소요 사태가 이어져온 미국 미주리 주 퍼거슨 시의 한 식당. 사태 수습에 나선 미 최초 흑인 법무장관 에릭 홀더는 지역 관계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경험 많은 최고의 연방 수사관과 검사를 조사에 투입했다며 사태 진정에 협조를 부탁했다. 주방위군까지 나서 시위대를 압박하기만 했던 주 정부와는 사뭇 다른 태도에 지역 주민들은 마음을 여는 듯했다. 일부는 믿어보겠다며 악수를 청했다.
홀더 장관은 이후 시위에 나선 흑인 학생들과 브라운 군 유족을 만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학생들에게 나는 장관이지만 동시에 흑인이다. 나 자신의 일로 사건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던 퍼거슨 시 사태의 한복판에서 미 정부의 공권력 수장이 보여준 진정성 있는 소통은 예상보다 많은 공감을 얻었다.
흑백과 민관이 날카롭게 대치하며 제2의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였던 이번 사태는 홀더 장관 방문을 계기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제이 닉슨 미주리 주지사는 나흘 전 투입된 주방위군을 철수하겠다고 21일 밝혔다. 22일 새벽에도 시위대는 거리로 나섰지만 경찰과의 대치가 전날보다는 격렬하지 않았다.
홀더가 간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반신반의하던 미국인들은 그의 방문과 소통 효과에 놀라고 있다. 브라운 군의 어머니 레슬리 맥스패든 씨는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장관 방문을 계기로 달라진 점이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났다.
홀더 장관의 언행이 너무 감성적이고 시간이 지나면 정치적 퍼포먼스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21일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이 사건이 잊혀져도 법무부는 퍼거슨 시와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태는 결국 해법을 고르기 어려운 난제일수록 정부와 정치권이 나의 문제로 여기고 당사자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소통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평범한 상식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다.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