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9시경 관광객 104명과 선원 5명 등 109명을 태운 홍도크루즈협업 소속 유람선인 바캉스호가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선착장 앞 200m 해상에서 좌초됐다. 인근에 있던 유람선과 어선이 구조에 나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다섯 달 만에 또 대형 해상 사고가 날 뻔했다. 만약 사고 지점이 홍도 앞 바다가 아니라 먼 바다였다면 어찌됐을지 아찔하다.
사망자나 실종자는 없었지만 이번에도 당국의 대응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좌초하는 유람선 승객을 구조하는 작업을 벌인 배는 100m 인근에 있던 유람선 선플라워호와 근처에서 조업 중인 어선들이었다. 해경 함정은 구조가 다 마무리된 뒤에야 현장에 출동했다. 바캉스호는 일본에서 1987년 제작된 선령() 27년 된 노후 선박이다. 이 배가 10년 면허를 받아 운항을 시작한 시점이 세월호 참사 한 달 뒤인 5월 16일이다. 당시 홍도 주민 70여명은 낡은 바캉스호가 암초가 많은 홍도 인근 운항에 적합하지 않다며 허가를 내줘선 안 된다고 목포 해경에 탄원했지만 이를 묵살했다. 27년의 중고 여객선을 일본에서 들여와 증개축 작업을 거쳐 정원을 350명에서 500명으로 늘린 과정이 세월호와 흡사하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목포해경이 운항 면허를 내준 경위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유가족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며 세월호특별법 협상이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한 채 국회가 휴업 중인 와중에 해상 사고가 또 터졌다. 노후선박이 한반도 연안 곳곳에서 운항 하고 있고, 일본 중고 배를 헐값에 사들여 개조해도 당국은 여전히 도장을 찍어줬다. 이번 사고가 참사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1985년 관광유람선 침몰 사고 이후 주민들이 자체 매뉴얼을 만들어 신속 대응한 덕분이었다. 사고가 난 직후 승객이 119와 112에 구조 요청 전화를 걸었지만 구조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여전히 당국의 구조 체계는 뻥 뚫려 있는 것이다.
홍도 주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10 년 짜리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제도와 법규상 허점이 여전하다. 세계적인 조선 강국인 한국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해상 사고가 터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국민은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