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내년도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2조1429억원)을 전액 편성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만 35세 아동의 교육과 보육을 지원하는 누리 과정 예산 3조9284억 원 중 유치원 교육을 제외한 무상보육의 지원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내년 어린이집 대상 인원은 62만 명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제 교육감들이 국민과 어린이를 볼모로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따른 무상정책의 확대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지난달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국비 지원이 없을 경우 복지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교육감들이 나선 것이다. 누리 과정, 고교 무상교육, 돌봄교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교육복지 3대 공약이지만 내년도 교육예산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교육감들은 보육을 담당하는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니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공약으로 인해 정부 지자체 교육청 사이에 책임을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가 시작됐다. 선심성 복지 정책의 남발이 가져온 결과다.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선 전면 무상급식 공약을 앞세워 진보 성향 교육감 6명이 당선됐다. 2011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민주당은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등 3무 정책을 들고 나왔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문재인 후보는 전면 무상보육을 약속했다. 그러나 예산 대책 없는 복지의 확대는 빚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2012년 전국 교육청의 채무 총액은 14조 429억원이다. 1년 총 세입 예산액 중 26.8%에 이른다.
한정된 예산에서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일이 시급하다. 2011년 시작된 무상급식은 교육재정의 블랙홀이 돼버렸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에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공짜 점심을 베푸는 바람에 취약계층 학생 지원이나 낡은 학교시설 개보수 같은 예산은 대폭 줄어들었다. 복지지출 증가로 인한 재정 부담이 고민이라면 보편적 무상복지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계층 간 기회 균등을 보장하기 위해 저소득층 지원을 강화하진 못할망정 중상류층 가정의 자녀들에게 공짜 밥을 주느라 정작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층 아이들의 몫을 빼앗진 말아야 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헤크만 시카고대 교수는 고교와 대학 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을 저소득층 가정의 05세 유아를 지원하는데 쓰는 것이 사회 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지속 가능하지 않는 보편적 무상복지 공약의 민낯이 드러난 지금 복지 재정의 근본 해법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