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법관들은 변호사 개업을 당연하게 여기고 정계로도 종종 진출한다. 대통령들은 최고 법관을 심심찮게 행정부로 불러낸다. 현 박근혜 정권만 해도 낙마하긴 했지만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과 안대희 전 대법관을 총리로 지명했다. 과거에는 이회창 김석수 김황식 씨가 대법관 출신으로 국무총리를 지냈다. 선진국에서는 대법관이 정치인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변호사 개업도 거의 하지 않는다.
한국에는 정년까지 근무하는 법관이 거의 없다. 고법 부장판사가 못될 것 같으면 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대법관이 못될 것 같으면 고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옷을 벗고 변호사가 된다. 용퇴로 포장하긴 했지만 실은 전관예우()의 열매를 따먹을 차례가 온 것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대법관만큼은 변호사 개업을 자제하는 풍토가 있었다. 대법관은 모든 법관의 꿈인 자리다.
언제부터인지 전관예우의 꽃이 대법관 출신으로 바뀌었다. 상고사건이 늘어나면서 대법관 1명이 한해 처리하는 사건이 3000건이 넘는다. 대부분 사건은 대법관이 훑어보지도 못한 채 재판연구관들 선에서 걸러져 기각된다. 대법관이 한번이라도 사건을 훑어보려면 상고이유서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이름이 올라 있어야 한다. 그래서 상고이유서에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도장을 받으려고 애 쓰고, 그 도장 값이 보통 3000만5000만원이라고 한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불허했지만 법률에 근거가 없는 일이다. 대법관 출신에게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대법관까지 한 사람들이 도장 하나 찍어주는 것만으로 수천만 원 씩 버는 구조를 그냥 놓아두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전관예우 금지법에 따라 대법관들이 퇴직후 대법원 상고사건을 1년 동안 맡을 수 없게 되면서 1년 로스쿨 교수를 하다가 로펌으로 들어가는 관행이 생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 차원에서 대법관은 변호사를 개업하더라도 대법원 상고사건을 평생 맡지 않는 것이 법 이전의 도리일 것 같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