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러스하게 한 말이 분위기를 썰렁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도 그렇다. 19일 청와대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한 말이다. 그날 아침신문에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라는 기사가 실렸다. 중동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청년들 일자리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중동 근무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이 담겨 있는 것 같지 않아 듣기 거북했다.
그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한 카페에서 청년들과 모임을 가졌는데 일부 청년단체 회원들이 영화 친구의 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를 패러디한 팻말 청년들을 중동으로 보내라니, 니가 가라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1970년대 건설근로자들은 가족과 떨어져 술 오락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중동에서 사막의 열기와 싸우며 돈을 벌었다. 그 시절 청와대에서 살았던 박 대통령이 중동 가라는 말을 할 때는 근로자 가족들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봤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대면보고가 너무 없다는 기자의 비판에 배석한 장관들을 돌아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져 웃음을 끌어냈다. 그러고는 기자를 향해 청와대 출입하시면서 내용을 너무 모르시네요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기자의 날 선 질문을 유머로 받아넘겼다고 찬사를 보낸 이도 있었지만 그때 장관들이 웃는 것 말고 무슨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까.
박 대통령도 자신이 유머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수첩에 재미난 말을 써가지고 다니면서 들려주곤 했다. 썰렁한 유머여도 나름대로 애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즉흥적인 유머는 공감 능력의 소산이다. 전개되는 상황을 짧은 시간에 파악하고 미묘한 균열의 선을 파고들어가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다. 효과적인 유머를 하고 싶다면 공감 능력부터 키우라고 말하고 싶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