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문헌에서 횡설수설이라는 말은 고려시대 문인 이색이 정몽주를 평가한 글에 처음 나온다. 이색은 정몽주는 횡(가로)으로 말하나, 수(세로)로 말하나 항상 도리에 맞았다(횡설수설무비당리)고 썼다. 성리학에서 횡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뜻하고, 수는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시간을 의미한다. 정몽주는 현실과 역사를 꿰뚫고 있었다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다.
동아일보의 횡설수설은 지령 100호인 1920년 7월 25일자에 탄생했다. 첫 횡설수설은 동아일보가 창간 이후 3개월여 동안 16번에 걸쳐 배포 금지를 당한 것을 겨냥해 언론 자유가 참혹하게 유린당하고 있다면서 횡설수설은 도리어 이런 곳에 가치가 있다고 적었다. 마지막 대목에선 오늘은 동아일보 1백호 기념이라는 축사만 올리고 횡설수설은 참자. 누가 좋아할지 모르지만이라고 끝맺은 것이 흥미롭다.
횡설수설은 말에 조리와 순서가 없다는 뜻도 있지만 긍정적인 의미로도 자주 사용됐다. 조선 중기의 학자 송준길은 사람을 깨우치기 위해 직설()하기도 하고 우회해 말하기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 후기의 문집인 소재집()에선 다방면으로 논설을 펴서 깨우치고 이해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엄혹한 일제 치하에서 횡설수설의 의미를 중의()적으로 사용하면서 자유분방한 필치와 폭넓은 관점으로 현실을 파헤치려고 노력했다.
횡설수설의 비판은 신랄했다. 신설 다음 날인 1920년 7월 26일에는 조선총독부의 지방자치제 방안에 대해 선퇴(매미 허물) 같은 것이면 한약방에나 공급하라고 질타했다. 같은 해 8월 8일에는 일제가 조선인 공무원을 채용하는 계획을 밝히자 그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정치를 야시(야시장) 행상의 영업술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나무랐다. 창간 95주년을 맞는 오늘 횡설수설이 시작 당시의 정신과 기개를 이어나가고 있는지 깊이 반성하게 된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통찰력으로 현실과 역사를 마주하기 위해 다시 고삐를 바짝 조이고자 한다.
홍 찬 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