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루 입혀서 묻어달라구.
시골 소년과 도시 소녀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황순원(19152000)의 단편 소나기는 이렇게 끝났다. 소나기 탓에 갑자기 불어난 개울가를 건너려고 윤 초시네 손녀딸 소녀는 소년의 등에 업혔다. 소녀의 분홍 스웨터 앞자락엔 소년의 등에 업혔을 때 묻은 검붉은 물이 들어 있었다. 병세가 악화된 소녀가 죽은 뒤 그 소년은 어떻게 됐을까.
황순원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가 생전 교편을 잡은 경희대 출신 소설가 전상국 박덕규 서하진 이혜경 구병모 씨가 소나기 이어쓰기 5편을 선보였다. 소설은 대산문화재단에서 펴내는 대산문화 2015년 여름호에 수록됐다.
전상국의 가을하다에서 소년은 중학교 2학년 현수가 됐다. 소녀는 죽었지만 소년의 가슴속에선 어린 그 나이로 살아 있다. 중학생 사내아이는 소녀가 자신에게 던진 조약돌을 버리지 않았다. 가슴속 소녀는 오늘도 소나기가 왔음 좋겠다고 말을 걸지만, 현수는 소나기가 와도 너는 안 올 거잖아라며 낙담한다. 그런 현수에게 자꾸만 담임선생님이 눈에 들어온다. 왜 자꾸 선생님 생각만 해란 소녀의 목소리에서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의 성장이 엿보인다.
서하진의 다시 소나기에선 소녀가 죽은 지 3년이 흘렀다. 소년은 밤이면 분홍 스웨터를 입은 채 잠들어 있는 소녀의 무덤가로 간다. 그곳에서 노래도 들려주고 이야기도 나눈다. 어느 날 소녀와 똑 닮은 윤씨 성을 가진 소녀를 만난다. 소녀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소나기가 툭, 하고 떨어진다.
도시 공장으로 취직해 담배 피우는 어른이 된 소년도 그려진다. 이혜경은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톳물 속에서 어른이 되고서도 소녀를 잊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그렸다. 어느 잡지에서 소녀를 닮은 여학생을 보고 사내는 종이를 찢어 주머니에 넣는다. 기계의 부속품 취급을 받는 동안 오그라들었던 마음은 그 종이를 만지작거리다 보면 아침볕 받는 나팔꽃처럼 펴졌다.
박덕규는 사람의 별에서 지구를 떠난 별나라 소녀의 독백을 판타지로 그렸다. 구병모는 헤살에서 소녀가 죽은 뒤 징검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안타까운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