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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가격을 매기고, 시보다 백지가 더 많은

독자가 가격을 매기고, 시보다 백지가 더 많은

Posted June. 22, 2015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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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내 카르텔이 표절 근절에 방해

그때 사과하고 인정했다면 이런 사달이 나지 않았을 텐데.

계간 작가세계 편집위원 박철화 씨(50)는 16일 일본 여행 중에 신 씨의 표절 논란 소식을 접했다. 그는 1999년 작가세계 가을호에서 신 씨의 소설 작별 인사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을 표절했다며 처음으로 신 씨에 대한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출판사들이 철저하게 신 씨를 감싸면서 이런 의혹이 묻혔다는 게 박 씨의 주장이다.

황석영 등 원로작가부터 유력 문학상을 수상한 권지예, 조경란까지 그동안 문단에서는 유명 작가들의 표절 시비가 여러 차례 있었다(표 참조). 하지만 문단 내부에서만 시끄러웠을 뿐 작가가 부인하고 출판사가 보호하면 금세 묻혔다.

이는 신인 작가로 등단해 기성 작가로 자리 잡는 과정의 폐쇄성이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출판인 A 씨는 작가가 되려면 대형 출판사나 신춘문예 같은 좁은 관문을 뚫어야 하는 문학 고시생부터 돼야 한다. 등단 후엔 선후배, 선생과 제자로 묶이면서 서로에 대한 비판이나 표절 의혹엔 눈감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등단 후엔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 문학 메이저 출판사의 계간지 등에 작품을 연재하고 책으로 묶어 출판해야 밥벌이가 가능하다. 뜨는 작가가 되려면 대형 출판사의 편집위원, 평론가가 하사하는 주례사 비평과 문학상도 필요하다. 소설가 B 씨는 많은 작가들이 신경숙은 가더라도 출판사 권력은 영원하다며 출판사에 밉보이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문학평론가인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는 20일 페이스북에서 최근 문학동네 편집위원 신형철 권희철 씨가 신 씨를 비판한 것에 대해 대세에 밀린 사후약방문이다. 창비 이상으로 문학동네의 책임이 크다. 문학동네 지면을 통해 이뤄진 신경숙 소설에 대한 글과 대담, 리뷰는 상당 부분이 확대해석, 문학적 애정 이상의 과도한 의미 부여였다고 밝혔다.

문학작품 표절 기준도 없어

표절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점도 표절 의혹이 반복되게 하는 원인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김찬동 법제연구팀장은 몇 개 단어, 문장이 겹치면 표절이란 구체적 기준이 국내 저작권법 조항에는 없다며 저작권 침해 여부는 법원에서 원저작물을 봤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의거성과 두 작품의 실질적 유사성을 기준으로 상황에 따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음악계와 학술계 등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표절 문제에 대처해왔다. 음악계는 핵심 부분 두 소절(8마디)이 똑같을 경우, 학계에선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거나 명제 또는 데이터가 유사한 경우 등을 표절로 인정한다는 기준이 마련됐다. 반면 문학계는 작품 표절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조차 없다.

문인윤리위원회서 백서 만들자

본보의 제언 요청에 응한 전문가들은 대형 출판사의 지나친 이기주의 버리기 문단의 도덕성 높이기 표절에 관한 명확한 기준과 처벌 규정 마련하기 표절 문제에 대한 백서 제작하기 등을 제시했다.

박철화 편집위원은 신 씨의 잘못도 있지만 대형 출판사의 상업주의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수 전 민음사 대표 편집인은 베스트셀러 유명 작가의 표절 문제니까 용서해주겠단 생각은 문단의 낮은 도덕 수준을 보여준다며 정치인도 자기 표절로 낙마하는 시대에 문단만 사회의 양심 기준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원 경희대 교수는 연구윤리 규정이 있는 학술계처럼 문학계도 법률가 등을 참여시켜 명확한 윤리 강령과 처벌 규정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가칭 문인윤리위원회를 만들어 지금까지의 표절 행위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윤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