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다음달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는 데 대해 일본이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고 항의했다. 일본 외무성은 중국의 기념행사는 과거에 치중한 것이며 유엔은 회원국들이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촉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유엔 회원국이 제3국에서 열리는 행사 참석을 놓고 유엔 총장에게 항의한 것은 이례이다. 2차대전 종전 70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진솔한 반성을 회피하는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반 총장의 국적을 의식하고 항의한 것이라면 더 옹졸하다.
반 총장은 과거를 돌아보고, 우리가 어떤 종류의 교훈을 배워왔는지, 그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 밝은 미래를 향해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열병식 참석의) 주된 목적이라고 이례적으로 상세하고도 단호하게 답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보이는 퇴행적 입장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셈이다.
아베 총리는 중국의 초청을 받았으나 참석을 포기했다. 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행사 자체가 못마땅한데다 패전국 대표로 참석하자니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도 일본에는 대중()외교의 손실로 다가올 것이다.
전승절을 둘러싼 세계각국의 외교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은 국제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전승절을 준비했다. 27일 동중국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고, 동해에서는 러시아와 9일간 합동군사훈련을 하면서 힘을 과시했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서방국 지도자들의 전승절 불참은 중국의 공공연한 세력과시에 대한 반대의 뜻이 담겨 있다. 박 대통령도 중국의 팽창주의에 동조한다는 오해를 받게 될 것을 우려해 고심을 거듭했다. 박 대통령의 방중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함께 싸운 한중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한반도의 평화를 진작시키기 위한 노력에 더 큰 무게가 있다는 것을 세계 각국에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북한은 최룡해 비서가 참석하지만 중국이 그를 통해 김정은에게 보낼 메시지에 따라 북중,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본이 중국의 외교적 이니셔티브에 반발하게 되면 한미일 대북 공조에 나쁜 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다. 박 대통령은 동북아 주요국 지도자 가운데 유일하게 전승절에 참석한다. 동북아 정세를 한국에 유리하게 이끄는 외교 능력을 발휘할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