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김대중의 양김() 시대는 민주화라는 역사적 성취의 이면에 많은 숙제를 남겼다. 지역주의는 박정희 정권에서 뿌리를 내린 것이긴 하지만 1987년 대선 과정에서 양김의 분열 이후 김영삼의 영남세력, 김대중의 호남세력으로 갈려 과거보다 더 기승을 부렸다. 영남 일색, 호남 일색의 정당 지지구도는 선거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영남의 압도적지지, 노무현 정권은 호남의 압도적 지지가 없었다면 성립하기 어려웠다.
지역주의는 정당 공천을 선거 자체보다 중요하게 만들어 선거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공천을 둘러싼 당내 대립을 격화시키는 요소가 된다. 지난 총선에서 전남 순천곡성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당선되고 대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의원이 선전해 지역주의 극복의 희망을 주긴 했다. 그러나 대다수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당선을 위해 지역주의로 돌아간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에 앞장서기는커녕 청와대 비서나 장관을 새누리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대구경북 및 서울 강남(TKK) 지역에 출마시키려 하고 있다. 호남을 기반으로 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천정배 전 의원 역시 지역주의에 편승한 것이다.
새누리당이 친박이니 비박이니 대립하고, 새정치연합이 친노니 비노니 대립하는 계파 정치에 과도히 의존하고 있는 것도 양김 시대의 잔재다. 양김은 민주화 이후에도 과거 독재 정권과의 투쟁에서 썼던 정당 구조를 온존시켰다. 양김도 국회의원 공천권을 내려놓지 않았고 상도동계나 동교동계로 대표되는 계파를 타파하지도 않았다. 양김 시대에 꼭 해야 했던 정치개혁의 타이밍을 놓친 결과 한국 정치는 여전히 국민 설득에 기초한 민주적 리더십을 형성해야 하는 힘든 과제와 씨름하고 있다.
양김 시대에도 친인척과 측근들의 부패는 끊이지 않았다. 양김은 민주화가 단순한 독재의 종식이 아니라 관() 주도 사회에서 민()주도 사회로의 거대한 이행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지난해 세월호 사고는 군사정권과 산업화 시대에 적응된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못한 탓이다. 민주화로 관이 주도해 유지하던 질서는 흐트러지기 시작했으나 이를 대체할 새로운 자율적 질서는 형성하지 못한 것 역시 큰 틀만 바꾸려한 양김의 한계다. 그 속에 숨어있던 우리 사회의 견고한 정경유착 관계를 쇄신하지 못한 것이다.
지역구도 정치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남북통일을 말하는 것은 주제넘어 보인다. 계파 정치를 넘어서지 못하고서 어떻게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유착의 적폐를 해소하지 않으면 한국은 투명한 선진사회로 가기 어렵다. 양김의 성취는 그것대로 평가하더라도 그들의 개혁이 어떤 점에서 불철저했는지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은 미래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