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영화관 ‘허리우드 클래식’이 올해로 문을 연 지 만 7년이 됐다. 사회적 기업 ‘추억을 파는 극장’의 김은주 대표(42)가 옛 허리우드극장을 2009년 어르신 전용으로 바꾼 곳이다. 객석이라야 300석에 불과한 단관(單館)극장이지만 지난해 누적 관객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입소문이 나면서 요즘은 하루 800명 이상이 찾는다. 웬만한 멀티플렉스 못지않다.
실버영화관의 존재 이유는 ‘노인의 즐길 권리’다. 영화는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여가생활이지만 고령층의 극장 이용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으로 예매하지 않으면 자리 잡기도 어렵고, 상영되는 영화도 온통 젊은 층 취향이다. 일반 극장과 허리우드 클래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상영작과 가격. 개관작 ‘벤허’(1959년)를 비롯해 ‘흑기사’(1952년), ‘태양은 가득히’(1960년), ‘사랑의 스잔나’(1976년) 등 한때를 풍미했던 ‘그때 그 시절’의 명화들이 은막에 걸린다. 55세 이상과 동반자에게 각각 2000원에 티켓을 판다. 일반 멀티플렉스 관람료의 20%에 불과한 가격이다.
영화관 곳곳에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를 했다. 자막 크기는 일반 극장의 1.5배. 화장실 욕구를 참기 힘든 노인들이 어두운 극장에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직원도 있다. 인터넷 예매 없이 표를 당일 아침부터 파는 것도 특징이다. 김 대표는 영화 상영 전 직접 작품 설명과 함께 에티켓, 비상구 안내를 한다. 안전 귀가를 위해 오후 8시에 상영을 마친다.
초기 운영은 쉽지 않았다. 연간 3억 원에 이르는 필름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것도 버거웠다. 서울시와 SK케미칼이 매년 1억여 원을 지원하면서 조금씩 수지가 개선됐다. 이보다 더 큰 동력은 관객들의 사랑이다. 김 대표는 “나는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종로에 나가도 된다”고 자신했다. 어르신 중 누군가는 우산을 씌워줄 정도로 관객들과 친분이 많다는 것이다. 어려웠던 시절 한 관객은 김 대표를 불러 “상황 좋아지면 갚으라”며 3000만 원을 내놓기도 했다. 희귀 고전영화 필름을 구할 때는 영화계 출신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인근 탑골공원의 ‘주머니 얇은’ 노인들만 이곳을 찾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직 장관과 장성, 대기업 임원 출신 단골도 많다. 한 재력가는 ‘내 생애 와이프와 사운드 오브 뮤직을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김 대표는 “이렇게 받은 편지가 5000통이 넘는다”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