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영화계의 불황에도 아직 희망의 불씨는 살아 있다. 한국 관객들이 주로 여름에 한국 영화 몰아보기를 하며 애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반인 설문조사 결과 7월 말부터 8월 초(7말 8초)에 한국 영화를 보고 싶다고 답한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올해 여름 개봉하는 블록버스터 가운데 가장 기대하는 작품은 무엇이냐’란 질문(중복 응답)에 다음 달 개봉할 예정인 ‘덕혜옹주’(67.3%)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고종황제의 막내딸로 굴곡진 역사를 온몸으로 겪었던 덕혜옹주(1912∼1989)의 일생을 다룬 작품으로, 원작 소설(권비영 지음·다산책방)이 10년간 가장 많이 읽힌 소설 8위에 오를 정도로 탄탄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 ‘봄날은 간다’(2001년) 등을 통해 한국 로맨스 영화의 거장으로 올라선 허진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배우 손예진 박해일 등이 출연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실존 인물을 다룬 시대극인 데다 적절한 스타 캐스팅이 이뤄져 기본적인 흥행코드를 갖춘 작품”이라며 “영화의 중심이 될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기존과 다르게 보여주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하나의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인천상륙작전’(27일 개봉) 역시 관심이 컸다. ‘덕혜옹주’와 거의 비슷한 수치(63.3%)로 2위에 올랐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1950년 9월 15일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최고사령관(1880∼1964)의 놀라운 작전을 소재로 했다. 당시 대북작전에 투입됐던 한국 해군 첩보부대원(이정재)의 목숨을 건 임무를 다뤘는데, 할리우드 배우 리엄 니슨이 맥아더 장군 역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강 평론가는 “영화 ‘연평해전’의 기시감을 없애고 블록버스터적 요소와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지가 흥행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객들은 이 밖에도 ‘부산행’(44.4%)과 ‘터널’(33.0%) 등의 한국 영화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반면 전문가들은 20일 개봉하는 ‘부산행’에 큰 점수를 줬다. 인터뷰에서 올여름 최고 기대작으로 10명이나 이 영화를 거론했다. ‘부산행’은 좀비가 등장하는 재난 블록버스터라는 독특한 콘셉트의 작품. ‘돼지의 왕’(2011년) ‘사이비’(2013년) 등 애니메이션계에서 명성을 얻은 연상호 감독의 실사영화 장편 데뷔작으로 올해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큰 호평을 받았다. 다음 달 10일 개봉하는 ‘터널’ 역시 재난영화로 주목받고 있다. 2014년 ‘끝까지 간다’(345만 명)의 김성훈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배우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 등이 출연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