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그제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청와대에서 근무해 보면 안다. 거기선 대통령이 곧 법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했는데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등의 혐의가 무슨 말이냐는 방어논리다. 덕분에 구속을 면했을지는 몰라도 청와대가 법치 아닌 어명(御命)을 받드는 전근대적 왕조시대처럼 작동했다는 고백과 다름없다.
우 전 수석뿐이 아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박근혜 정부의 상당수 공직자들이 “대통령 지시대로 따랐는데 죄가 되느냐”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은 대통령 지시로 비밀문건 47건을 포함한 180건을 최 씨에게 넘겼다고 했다. 안종범 전 정책수석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낼 대기업과 구체적인 액수까지 지정했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두 사람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라서 대통령 지시를 무작정 따랐다고 치자. 오랜 관료생활을 한 조원동 전 경제수석과 최상목 전 경제금융비서관(현 기획재정부 1차관)까지 민간인이 보기에도 옳지 못한 일을 대통령 지시라고 무조건 따른 것은 공직사회가 심각하게 고장나 있다는 반증이다.
안 전 수석은 어제 헌재에 증인으로 나와 “롯데에 70억 원을 돌려줘야 한다고 건의했던 것처럼 (미르와 K스포츠) 두 재단 설립 때 판단했어야 했다”고 뒤늦게 자책했다. 공무원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발언이다. 국가공무원법 1조는 국가공무원을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형법은 공무원의 경우 ‘상관의 적법한 명령’을 수행하면 ‘위법성 조각사유(불성립)’를 인정한다. 즉 상관의 명령이라도 적법하지 않은 명령을 수행했다면 처벌을 면할 길이 없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국무회의가 받아쓰기나 하는 ‘어전(御前)회의’처럼 됐다는 지적은 박근혜 정부 출범 초부터 나왔다.
공무원 임용 때는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선서를 한다. 헌법과 법령, 국가가 아니라 특정 상관이라 개인, 사조직의 충복이 되는 순간 자신은 물론 나라와 국민의 불행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