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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3일 기다린 유소연도, 날벼락 4벌타 톰프슨도 울었다

953일 기다린 유소연도, 날벼락 4벌타 톰프슨도 울었다

Posted April. 04, 2017 13:53   

Updated April. 04, 201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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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를 확정지은 유소연(27)이 환호하는 순간 쓰라린 패배를 당한 렉시 톰프슨(미국·사진)은 고개를 숙이며 쓸쓸히 18번홀 그린을 떠났다. 1000일 가까이 기다렸던 우승의 꿈을 다시 이룬 유소연은 눈시울을 붉혔고, 믿기지 않는 패배를 떠안은 톰프슨의 볼에서도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3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 다이나 쇼어 코스(파72)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승자와 패자 모두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3타차 공동 3위로 출발한 유소연은 보기 없이 버디 4개로 4타를 줄여 최종 합계 14언더파로 톰프슨과 동타를 이룬 뒤 연장 첫 번째 홀에서 버디를 낚아 우승했다.

 2014년 8월 25일 캐나다여자오픈 이후 952일 만에 LPGA투어 통산 4승(메이저 2승)째를 거둔 그는 우승 상금 40만5000달러(약 4억5000만 원)를 받았다.

 톰프슨의 불운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우승이었다. 이날 3타차 단독 선두를 질주하던 톰프슨은 12번홀을 마친 뒤 LPGA투어 경기위원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전날 17번홀 30cm 남짓한 짧은 파 퍼트를 남긴 상황에서 공을 마크한 뒤 다시 놓는 과정에서 실제 위치가 아닌 홀에 2cm 정도 가깝게 공을 놓은 것이 벌타 사유가 됐다. 볼 뒤에서 마크를 하는 대부분 골퍼와 달리 톰프슨은 볼 옆쪽에서 마크를 했는데 무심코 실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은 TV 시청자의 e메일 제보로 드러났다. 톰프슨은 “농담하느냐”며 따졌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잘못된 위치에서 플레이한 데 따른 2벌타에 스코어 오기(誤記)에 따른 2벌타까지 보태져 총 4벌타가 내려졌다. 톰프슨의 전날 17번홀 스코어가 ‘파’에서 ‘쿼드러플 보기(+4)’로 바뀌면서 그의 순위는 5위까지 추락했다. 억울함 때문에 경기 도중 수시로 눈물을 훔쳤던 톰프슨은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승부를 연장까지 몰고 갔다. 갤러리들은 “렉시”를 연호하며 일방적인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유소연의 단단한 벽을 허물지는 못했다.

 톰프슨에 대한 벌타 부과는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타이거 우즈는 트위터를 통해 “집에 있는 시청자가 경기위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유소연은 “16번홀 티샷 직전에 벌타 얘기를 들었다.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우승권에 진입해 심리적인 동요가 있었지만 내 경기에만 집중하려 했다”고 말했다.

 최근 60개 대회 연속 컷 통과 행진을 이어갈 만큼 꾸준함의 대명사였던 유소연은 지난주까지 LPGA투어에서 우승 없이 상금과 평균 타수 1위에 올라 ‘무관의 여왕’으로 불렸다. 하지만 1등만 인정하는 프로 세계에서 지난해 말 메인스폰서와의 재계약에 실패하기도 했다. 이번 우승으로 세계 랭킹을 3위에서 2위로 끌어올린 그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꾸준히 기다렸는데 메이저 타이틀을 안게 됐다”며 기뻐했다. 경기 후 유소연은 대회 전통에 따라 어머니, 여동생, 캐디, 에이전트와 18번홀 그린 옆 ‘포피 연못’에 뛰어들었다.

 한편 한국 선수는 이번 시즌 7개 대회에서 5승을 합작하는 초강세를 유지했다.



김종석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