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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여운형

Posted July. 19, 2017 07:25   

Updated July. 19, 2017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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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정국에서 서로를 민족반역자로 규정할 만큼 가장 치열한 대립각을 세운 것은 한민당과 공산당이다. 해방정국의 정치세력을 우파로부터 좌파까지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거론한다면 한민당과 이승만과 김구, 김규식과 안재홍, 여운형, 박헌영과 김일성의 순이 될 것이다. 한민당과 이승만과 김구는 우파, 김규식과 안재홍은 중도우파, 여운형은 중도좌파, 박헌영과 김일성을 좌파라고 분류할 수 있다.

 ▷박헌영과 김일성은 같은 공산당원이었기에 강력한 라이벌이기도 했다. 본래 박헌영이 장악한 서울의 공산당이 ‘당 중앙’이었고 김일성이 장악한 것이 그 산하의 ‘북조선 분국’이었다. 김일성은 북조선 분국의 주도권을 장악한 후 다른 정치세력과의 통일전선기구를 수립하고 임시인민위원회라고 불렀다. 그러나 남조선의 통일전선은 좌우합작을 미 군정청이 지원하고 있어 인민당의 여운형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고 박헌영은 소외될 것을 두려워했다. 김일성은 좌우합작에 적극적인 여운형을 선호했다. 나중에 결국 북한에서 박헌영은 숙청되고 여운형의 자식들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이승만은 뒤늦게 귀국해 한민당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만들어 자기 세력 구축에 나섰다. 이승만은 좌우합작에 가장 부정적이었고, 여운형 김규식 등 중도파를 내세워 좌우합작을 지원한 존 하지 군정청장과 대립했다. 미군정의 좌우합작 지원은 1947년 그리스의 공산화 위협에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고 본격적인 냉전이 시작되면서 사멸됐다.

 ▷해방정국에서 송진우 여운형 김구가 차례로 암살당했다. 브루스 커밍스는 한민당 책사 송진우의 암살을 김구 측 소행으로 본다. 여운형 암살은 우파 측 소행이라는 설도 있고 박헌영 측 소행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구 암살은 이승만 측 소행이라는 설이 있다. 여운형이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백주대낮에 피격된 날이 70년 전 오늘이다. 남한 단독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이 독재 끝에 쫓겨나 하와이로 망명한 뒤 쓸쓸히 사망한 날도 52년 전 오늘이다. 지금도 그 격렬함이 느껴질 것 같은 시대의 인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