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오바마 여사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로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백악관을 떠난 뒤 지난달 말 처음 공개석상에 섰을 때 그는 ‘가장 아팠던 상처’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그러자 작년 11월 한 백인여성이 자신을 ‘원숭이’로 조롱한 발언을 언급하며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 답했다.
▷당시 웨스트버지니아 주 공공기관에서 일했던 파멜라 테일러는 백악관 안주인의 교체에 대해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품위 있고 아름답고 위엄있는 퍼스트레이디를 갖게 돼 기운이 난다. 하이힐을 신은 원숭이를 보는 것에 신물이 난다.’ 여기에 “정말 빵 터졌다”라는 댓글로 맞장구까지 쳤던 소도시 클레이의 시장은 결국 사임했다. 오바마 여사는 “8년 동안 이 나라를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도 피부색 때문에 아직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고 개탄했다.
▷미국 사회의 백인우월주의는 여전히 힘이 세다. 퍼스트레이디조차 피부색으로 인한 인종 차별은 피해갈 수 없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12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 시위대로 인해 촉발된 폭력사태를 봐도 알 수 있다. 나치 상징 깃발을 흔들고 ‘피와 영토’ 같은 구호를 외친 극우 단체 시위로 인해 버지니아 주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지독한 증오와 편견, 폭력을 최대한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며 국민통합을 호소했지만 역풍을 맞았다. 이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을 콕 집어 비판하지않고 두루뭉술 넘긴 발언이란 비판이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은 1883년 ‘인간의 능력과 그 발달 탐구’라는 책을 펴냈다. 사이비 과학으로 분류되는 ‘우생학’의 출발점이다. 독일의 히틀러는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이를 인종청소의 빌미로 써먹었다. 백인을 신이 선택한 인종으로 믿는 시대착오적 주장이 21세기에 되살아났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불만과 분열을 부추기는 정치 때문일까. 증오와 적개심-불온한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잠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