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인 22.3%는 65세가 넘어서도 일한다. 남성의 경우 70세 넘어서도 일하는 사람이 근 20%에 이른다.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은 27.7%로 세계 최고다. 일본 총무성이 18일 ‘경로의 날’을 기해 발표한 내용이다.
15일 해외 언론을 대상으로 한 사전 기자회견장에서는 외신기자들에게서 각이 선 질문이 빗발쳤다. 많은 노인이 일하는 이유에 대해 특히 유럽 기자들은 고령자들이 저임금에 시달리기 때문 아니냐, 사회복지가 불충분하기 때문 아니냐고 물었다. 고용 고령자 4명 중 3명이 비정규직인 것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는 ‘본인이 일하고 싶은 시간대에 일하고 싶어서’가 1위를 차지한 설문 결과를 소개했지만 기자들은 수긍하지 못하는 듯했다.
노년 근로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일손 부족으로 허덕이는 일본의 경우 노인들이 일을 해줘야 사회가 돌아간다는 현실도 있다. 지난해 아베 신조 총리가 ‘1억 총활약 사회’를 내걸고 노인과 여성이 활약하는 사회를 주창하자 일각에서는 “죽을 때까지 일하란 말이냐”는 반발도 들려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일을 통해 삶의 보람을 찾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가 11일 출범시킨 ‘인생 100년 시대 구상회의’도 장수사회 일본의 좌표를 찾기 위한 시도다. 이 회의 멤버로 초빙된 ‘라이프 시프트(100세 시대)’의 저자 린다 그래턴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100세 시대에는 60, 65세 은퇴란 있을 수 없다”며 일하는 방식의 설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업 뒤에도 새로 공부할 기회가 주어져 생애를 통해 배우고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이중고를 맞아 위기의식을 토로하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2025년 문제’, ‘2035년 문제’ 등 인구 피라미드에서 읽어낼 수 있는 미래상은 암울하기만 하다. 오죽하면 군사안보 전문가인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조차 “일본 최대의 안보 위기는 인구 문제”라고 지적했을까.
“이거 등골 서늘해지는 책이에요.” 기자회견이 끝난 뒤 만난 사이키 슈지 총무성 통계조사부장은 ‘미래의 연표’라는 책을 소개했다. 8월 취임한 노다 세이코 총무상이 직원들에게 일독을 권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책에서 제시된 연표를 따라가다 보니 공포감이 몰려온다.
‘2020년, 일본 여성의 절반이 50세를 넘긴다. 2024년이면 전 국민의 3분의 1이 65세 이상이 된다. 2025년엔 임종을 맞을 장소가, 2027년엔 수혈용 혈액이 부족해지고, 2033년이면 세 집 중 한 집이 빈집이 된다. 2039년이 되면 시신을 처리할 화장장이 부족해지고, 2040년이면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이 소멸한다. 2042년에는 고령자 인구가 정점을 맞이한다….’
책은 처방전도 제시했다. “고령자를 삭감하자”는 항목도 있다. 고령자의 정의를 ‘65세 이상’에서 ‘75세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 셋째 아이부터 국가가 1000만 엔(약 1억130만 원)씩 지원해 줄 것도 권하고 있다.
한국은 2018년에 고령화율 14%에 이른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다. 일본이 고령화율 7%에서 14%까지 가는 데 24년 걸렸지만 한국은 18년 걸렸다. 같은 구간을 프랑스는 114년, 스웨덴은 82년, 미국은 69년 걸려 지나갔다. 더군다나 한국의 현재 합계출산율은 1.17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일본은 그래도 1.44는 된다.
머지않아 우리는 일본보다 더 심각한 미래를 맞게 된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부디 희망이 보이는 길을 찾아내 주길 비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