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는 없었다. 그러나 높은 이상과 희망을 휘날렸다.’
올림픽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간 경쟁의 무대다. 하지만 여러 선수가 국기를 가슴에 달지 못한 채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인류 평화를 위한 올림픽 정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때나 올림픽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할 경우 선수들을 개인자격으로 출전시켰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때는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난민팀(Refugee Olympic Team)이 출전했다. IOC가 올림픽을 앞두고 난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꾸린 팀이다. 시리아 수영선수 2명, 콩고민주공화국 유도선수 2명, 남수단 육상선수 5명, 에티오피아 육상선수 1명 등 총 10명으로 구성됐다. 내전 등으로 모국을 떠난 선수들이다. 국기 대신 오륜기를 가슴에 단 난민팀은 개막식 때 개최국 브라질 바로 앞에 입장했다. 시리아 출신 수영선수인 라미 아니스는 당시 “우리는 불평등 속에서 억압받는 이들을 대신해 이 자리에 섰다. 2020년 열리는 다음 올림픽(일본 도쿄)에는 전 세계 난민이 사라져 각자의 국기를 달고 출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개인 자격 선수가 가장 많이 출전한 건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회다. 당시 내전을 겪고 있던 유고슬라비아와 마케도니아의 선수 58명이 개인 자격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마케도니아는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결성되지 않은 상태라 자국 선수들을 파견할 수 없었고 IOC가 유엔의 제재를 받아들이면서 유고 국적 선수들도 출전 길이 막혔다. 하지만 개인 자격으로 출전한 유고 출신 사격 선수 3명이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2014년 러시아 소치 대회 때는 인도올림픽위원회(IOA)의 비리 문제로 선수 3명이 국기 대신 오륜기를 달았다. IOC는 IOA가 부패 혐의로 구속된 인물을 사무총장에 임명하자 IOA의 회원자격을 박탈했다. 스포츠의 탈(脫)정치를 강조하는 IOC는 인도 정치권이 IOA의 핵심 보직 선거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품으며 인도 정부와 대립했다.
신생국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 출전한 경우도 있다. 새 회원국이 올림픽에 참가하려면 최소 2년 이상이 지나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2000년 호주 시드니 대회 때는 1999년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한 동티모르 선수 4명이 개인 자격으로 출전했다. 2011년 수단에서 독립한 남수단도 2012년 영국 런던 대회 때 1명을 오륜기를 달고 내보냈다. 카리브 해의 네덜란드령 앤틸리스는 2011년 국가 해체 뒤 IOC 회원국 지위도 잃었으나 런던 대회에 선수 3명이 오륜기를 달고 출전했다.
강홍구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