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새해 첫날부터 “핵 단추가 내 책상 위에 있다”며 미국을 압박했다. 반면 한국엔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가능성을 밝히며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상반된 메시지를 날렸다. 대북 제재 효과가 올해 본격적으로 심화될 것으로 보고 한발 앞서 ‘통남봉미(通南封美)’로 방향을 선회해 국면 전환과 함께 한미 공조의 균열을 노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은 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면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는 것, 이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위협했다. 이어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쟁억제력을 보유하게 됐다”며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지난해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발사 이후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데 이어 이번엔 ‘대미 전쟁억지력 확보’를 밝힌 것이다. 김정은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핵탄두들과 탄도로켓들을 대량 생산, 실전배치 사업에 박차” “즉시적인 핵반격 작전태세 유지” 등 미국의 군사적 옵션 가능성에 정면으로 대응할 것임을 강조했다.
반면 한국엔 새해 ‘덕담’을 날렸다. “올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야 한다”고 적극적인 유화 메시지를 보낸 것. 김정은은 “남조선에서 머지않아 열리는 겨울철올림픽경기대회에 대해 말한다면”이라며 평창 겨울올림픽을 처음 언급했다. 이어 “(평창에)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격 제안했다.
“한 핏줄을 나눈 겨레로서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고 서로 도와주는 일은 응당한 일”이라고도 했다. 지난해 “서울 불바다” 운운하던 모습에서 180도 돌변한 것이다.
김정은이 손바닥 뒤집듯 통남봉미로 태세를 전환한 것은 새해 첫날부터 한미 동맹을 흔들고 올해 한반도 판세를 자신이 이끌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지난해에만 국제사회의 강력한 압박 속에 4차례 유엔 제재를 받은 김정은이 남한을 제재 국면 전환의 카드로 본격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신년사에 대한 분석 자료를 통해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을 거론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자신감과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올림픽 관련 남북 실무자 접촉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남북관계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한미 군사훈련 및 미군의 전략자산 순환배치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황인찬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