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발사 정보, 미사일 발사 정보. 이 지역에 착탄할(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옥내에 피난해 TV나 라디오를 틀어 주십시오.”
22일 오전 10시 정각 일본 도쿄(東京)도 분쿄(文京)구 도쿄돔 주변. 사이렌 소리에 이어 둔탁한 기계음과도 같은 전국순간경보시스템(J얼러트) 정보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사상 처음 일본의 대도시, 그것도 도쿄 도심에서 실시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가정한 대피훈련이다. 일본 정부 내각관방과 총무성 소방청, 도쿄도, 분쿄구가 공동 주최했다.
사이렌이 울리자 옥외와 지하철역 등에 있던 시민들은 안내에 따라 근처의 지하철 고라쿠엔(後樂園)역과 가스가(春日)역, 혹은 주변 건물 안으로 속속 대피했다. 도쿄돔 시티의 유원지에서 일하던 종업원 약 150명도 잰걸음으로 옥내로 뛰어 들어갔다.
훈련은 J얼러트로 주민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주민들이 신속하게 지하철역이나 건물 내로 피난하는 것을 확인하는 순서로 10분간에 걸쳐 동시다발로 이뤄졌다. 사전에 섭외된 주변 주민과 기업 관계자 등 약 250여 명이 참가했다.
훈련에 참가한 인근 회사원 기시모토 씨는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할지 몰랐다”며 “이런 기회를 소중히 여겨 일상에서도 잘 살려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이라는 참가자 기타야마 씨는 “정부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기획을 했는지 체험해보려 나왔다”며 “막상 큰일이 터진다면 제대로 대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전 훈련이 끝난 뒤 주최 측은 “북한이 쏜 미사일이 일본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이라며 “그 짧은 시간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에 대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도쿄도 위기관리관이 훈련 참가자들에게 ”이번 체험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알려달라”고 당부하는 장면도 있었다.
훈련은 질서정연하게 끝났지만 모두가 피난훈련에 찬성하는 건 아니었다. 사이렌이 울리기 40분 전부터 도쿄돔 근처에서는 피난훈련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집회를 열었다. 이들이 든 플래카드에는 “미사일 피난훈련은 전쟁훈련이다. 주민도, 지방자치단체도, 지하철 노동자들도 거부하자”고 쓰여 있었다.
시위를 주도한 요시노 모토히사(吉野元久) 국철도쿄동력차노동조합 집행위원장은 “정부는 대피훈련을 하는 이유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들지만 속내는 이를 기화로 일본의 평화헌법을 바꾸려는 것”이라며 “피난훈련은 전쟁훈련에 불과하고 전쟁훈련이 확산되면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에 더 다가가게 된다”고 강조했다.
반대시위에 참석한 한 전직 자위관은 “국가가 공공장소에 피난처도 준비하지 않고서 주민들에게 ‘도망가라’고 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3월 아키타(秋田)현에서 처음 주민 피난훈련을 한 이래 전국 26개 지역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비한 훈련을 해왔다. 대부분 북한의 핵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자치단체들이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실시한 훈련도 100여 회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대도시에서의 대피훈련은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데다 교통 등에 미치는 영향도 우려돼 한번도 실시하지 않았다. 이번 훈련은 일본 정부가 미사일 공격의 표적이 되기 쉬운 도심에서의 훈련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