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표정으로 염력을 표현하느라 나중엔 혀에 마비가 올 지경이었습니다. 하하”
배우 류승룡(48)이 ‘한국형 히어로’로 돌아왔다. ‘부산행’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인 ‘염력’(31일 개봉)을 통해서다. 영화는 건물 경비원으로 일하며 하루하루 별다른 의욕 없이 소주 한잔을 낙으로 여기며 살던 ‘석헌’에게 하루아침에 갑자기 초능력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슈퍼맨처럼 멋진 슈트도, 아이언맨 같은 첨단 무기도 없다. 가진 건 딸 루미(심은경)를 사랑하는 마음뿐이다.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 배우는 “염력으로 미세먼지를 싹 날려버렸더니 오늘은 하늘이 청정하다”는 우스갯소리로 운을 뗐다. 영화에서 그는 재개발을 앞둔 시장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딸을 괴롭히는 용역 직원들을 단숨에 날려버리고, 넥타이를 코브라처럼 춤추게 하는 등 화려한 초능력을 코믹하게 선보인다.
“재밌긴 했지만 엄청 어려운 연기였어요. 차를 찌그러뜨릴 때도, 물건을 날려버릴 때도 대부분 대사 없이 표정으로만 연기해야 했거든요. 혀와 무릎, 발가락까지 다 동원했어요. 빌딩 숲 날아다니는 장면 찍느라 와이어에 종일 매달려 있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요. 몸무게까지 불어서 더 힘들었나봐요.(웃음)”
그는 이번 영화에서 평범한 40대 아버지를 연기하기 위해 몸무게를 12kg이나 찌웠다. 근육 하나 없는 펑퍼짐한 몸매를 만드느라 오로지 먹어서 찌워야 했다. “체중 감량은 어느 정도 하면 되겠다 감이 오는데, 찌우는 건 도대체 모르겠더라고요. 촬영 기간까지 합해 6개월 동안 꾸준히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찌운 덕분에 더 현실감 있는 연기가 나온 것 같아요. 슈퍼맨처럼 타이즈 입고 연기하는 게 아니었으니 다행이죠.”
2004년 영화 ‘아는 여자’로 데뷔한 그는 ‘7번방의 선물’(2013년)에서 6세 지능을 지닌 딸 바보 용구 역을 소화하며 ‘1000만 배우’에 이름을 올렸다. 연이어 ‘명량’(2014년) 속 카리스마 넘치는 왜군 구루시마 역을 맡아 명실상부 톱배우 반열에 올랐지만, 최근 작품인 ‘손님’ ‘도리화가’ 등에서는 다소 아쉬운 흥행 성적을 냈다. 하지만 주춤했던 시간 덕분에 숨 가빴던 연기 인생을 점검하게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너무 쉼 없이 달렸던 것 같아요. 잘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나를 너무 혹사시켰다고 할까요? 내가 행복해야 내 연기를 보는 관객도 행복할 수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대학교 은사님도 찾아뵙고 팬들과 소극장 연극을 함께 보면서 처음 연기 시작할 때의 설렘과 두려움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인생은 속도보단 방향이 중요하니까요.”
이번 영화를 통해서도 다소 느리더라도, 묵묵히 제 갈 길을 향해 가는 평범한 시민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게 그의 말이다. “상업영화로서의 볼거리도 충분하지만 가진 자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평범한 이들의 모습이 담긴 영화라 참 마음에 들었어요. 사람들이 지닌 저마다의 희망을 응원하는 영화가 됐으면 합니다.”
장선희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