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지배계층 무덤인 대구 수성구 가천동 고분에서 전쟁 전리품으로 얻은 적장의 머리를 함께 묻는 장례문화가 행해졌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동안 순장(殉葬) 풍습을 보여주는 무덤은 다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머리를 함께 묻는 독특한 풍습은 지금까지 알려진 적이 없다.
신석원 전 삼한문화재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한국상고학보에 실은 논문 ‘대구 가천동 유적 출토 인골의 재검토’에서 가천동 고분군 50호 돌덧널무덤(석곽묘)에 대한 새로운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가천동 유적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5, 6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곽묘 260기와 돌방무덤(석실묘) 7기가 발견됐다. 출(出)자형 금동관을 비롯해 귀걸이, 반지 등 장신구와 토기·철기류 등 유물 3000여 점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상당수 무덤에서 피장자(被葬者) 인골이 함께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추가 발굴 조사 과정에서 뒤늦게 수습된 인골이 이전에 발굴된 것과 섞이면서 인골 주인을 재확인하는 작업을 최근 진행했다.
눈에 띄는 결과는 1명이 묻힌 것으로 알려졌던 50호 고분에서 무덤 주인이 묻힌 주곽(主槨)과 부장품을 묻는 부곽(副槨)에서 나온 인골이 다른 인물이란 점이 확인됐다. 1998년 현장 발굴에서 수습한 인골은 두개골편(머리뼈)과 하악골편(턱뼈) 및 치아, 우측 대퇴골편 등이었다. 하지만 정밀 분석한 결과 두개골편은 주곽이 아닌 부곽에서 발견돼 무덤 주인과는 다른 인물의 뼈였다. 이 뼈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답은 부곽의 크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길이 65cm, 너비 약 85cm, 깊이 30∼40cm로 시신이 들어가기엔 턱없이 작은 규모다. 신 전 연구원은 “시신을 구겨 넣었다 하더라도 두개골편이 부곽의 중앙부 근처에서 발견된 점을 볼 때 시신을 매장한 순장으로 보긴 힘들다”고 밝혔다.
또 두개골편 형질 분석 결과 남성으로 밝혀졌고 주곽에서 26.5cm짜리 소도(小刀)도 나왔다. 신 전 연구원은 “부곽 머리뼈가 남성인 점을 미뤄볼 때 전쟁 전리품 성격인 적장 머리를 함께 묻은 독특한 장례문화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비슷한 전례가 없기 때문에 유사 사례를 추가 발굴해 인신공희(人身供犧) 같은 고대 장례문화를 활발히 연구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