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 시간) 밤 장바티스트 신부는 급하게 연락을 받고 프랑스 남부 중세 도시 카르카손 병원으로 뛰어갔다. 일간 르몽드는 “발끝까지 길게 내려온 사제복도 그의 보폭을 늦추지는 못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늦을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병원에 누워 있던 남자는 아르노 벨트람 중령(45). 신부를 부른 사람은 6월 9일 성당에서 그와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수의사 마리엘이었다. 두 사람은 2016년 여름 수도원 투어에서 처음 만났고 당시 가이드를 맡은 이가 장바티스트 신부였다. 벨트람과 마리엘은 동거하며 몇 달 동안 정성스레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숨차게 달려온 장바티스트 신부는 병실 안에서 이 커플의 결혼 예식인 혼인성사와 죽음을 앞둔 이를 위한 병자성사를 동시에 진행했다. 사랑하는 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마리엘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장바티스트 신부는 병실에서 나와 “그는 신념으로 가득 찬 최고로 용감하고 똑똑한 남자였다”고 회상했다. 벨트람 중령은 다음 날 오전 6시 숨을 거뒀다.
벨트람 중령은 23일 오전 11시 15분경 경찰 중 가장 먼저 카르카손 인근 소도시 트레베의 슈퍼마켓 인질 현장에 도착했다. 트레베의 ‘슈퍼-U’ 슈퍼마켓에는 모로코 출신 이민자인 테러범 레두안 라크딤(25)이 손님 50여 명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라크딤은 한 시간 전인 오전 10시경 자신이 사는 카르카손에서 운전자와 탑승객을 총으로 쏴 한 명을 죽이고 차를 훔쳤으며 지나가던 경찰 4명에게 총을 쏴 일부에게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달아나 숨어든 곳이 이 슈퍼마켓이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라크딤의 한 손에는 총, 다른 한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다. 그는 아랍어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칼리프(이슬람 통치자)의 군인으로 자처했다. 그는 도망가려는 손님과 직원을 총으로 쏴 죽이기도 했다.
테러범과 경찰 간에 협상이 시작됐다. 라크딤은 2015년 11월 이슬람국가(IS)가 저지른 파리 바타클랑 극장 테러 용의자 중 유일하게 생포돼 재판을 받고 있는 살라 압데슬람의 석방을 요구했다. 긴 협상 과정에서 마지막 여자 한 명만 인질로 남자 벨트람 중령은 여성을 풀어주고 자신을 인질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라크딤이 수락하자 벨트람 중령은 무기를 버린 채 슈퍼마켓으로 걸어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벨트람 중령이 켜진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몰래 올려놓았는데 이를 통해 내부 상황을 파악하던 대테러특수부대가 곧바로 진입해 라크딤을 사살했다. 벨트람 중령은 총알 두 발을 맞고 수차례 흉기에 찔려 위독한 상태였다. 헬기로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밤새 그의 생환을 기원했던 프랑스 전역은 슬픔에 잠겼다. 에펠탑 불은 꺼졌고, 프랑스 전역에 조기가 걸렸다. 전국 군인경찰 건물에는 조화가 쌓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그는 죽을 때까지 싸웠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생명을 선물로 줬다”며 국가장으로 추도하겠다고 밝혔다.
어릴 때부터 군인이었던 할아버지를 우상으로 삼으며 군인을 꿈꿔 왔던 벨트람 중령은 1999년 엘리트 군사학교를 거쳐 최정예 대테러특수부대인 국가헌병대진압단(GIGN)에 선발됐다. 이후 이라크전에 참전해 십자무공훈장을 받고, 공화국 경비대 소속으로 대통령궁인 엘리제궁 경비를 맡기도 했다.
남동생 세드리크는 “그는 죽을 걸 알면서도 주저 없이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갔다”며 “낯선 누군가에게 삶을 줬다”고 슬퍼했다. 어머니는 “내 아들은 평소에도 ‘나는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해 왔다”며 “그게 다다. 이것이 내 아들이 사는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테러범 라크딤은 프랑스 국가안보 요주의 인물등급인 ‘파일 S(S-fiche)’ 명단에 포함된 인물이었다. 그의 자택에서는 IS를 언급한 노트가 발견됐고, 인질극 현장에서 3개의 사제 폭탄과 권총, 사냥용 단검 등이 나왔다. IS는 자기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파리 검찰청 대테러수사본부는 라크딤의 친구인 17세 청소년과 다른 여성 1명을 공모자로 검거해 무기 입수 경위와 범행 동기 등을 수사 중이다.
동정민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