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탈출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모두 추운 날 갈 곳 없이 사라진 호랑이의 행방을 궁금해하면서도 혹 마주치지 않을까 두려워하던 그때. 주인공 경유(이진욱)는 생애 가장 비참한 순간들을 연달아 맞이한다.
영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속 경유의 처지는 초라하다. 한때 소설가 지망생이었지만 펜을 놓아버린 지 오래. 밤에 대리운전을 하며 근근이 산다. 불행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 했던가. 동거하던 여자친구는 말도 없이 이사를 가버린다.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하다 계약직으로 일하던 여자친구가 한 달 전 해고됐다는 사실, 월세를 올려달라는 집주인에게 남몰래 사정했던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며 더욱 비참해한다.
한겨울에 갈 곳 없어진 그는 하나뿐인 친구 집으로 가지만 역시 환영받지 못하고,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하다 옛 애인 유정(고현정)을 만나기까지 한다. 소설가로 먼저 등단한 유정을 마주한 그는 어색한 안부를 나누고 헤어지지만, 유정으로부터 계속 연락이 오며 다시 흔들린다.
경유는 매 순간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느낀다. 자신의 앞에 놓인 길이 막다른 길인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나름의 희망이 있는 길인 것처럼 모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동물원을 탈출한 호랑이’와 경유의 처지를 계속해서 교차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메시지를 능동적으로 찾게 만든다. 이광국 감독은 “생활하면서 두려움 앞에서 도망쳤던 기억들을 담고 싶었다”며 “한 남자가 결국엔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이야기”라고 연출 배경을 설명했다.
이 감독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2010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년) 등에서 조감독과 조연출을 맡았다. 시종일관 술에 찌든 주인공, 어쩐지 모호한 주제의식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 군데군데 홍 감독 특유의 색깔이 묻어나는 것도 흥미롭다.
비참함 속에서도 다시 펜을 들며 나름대로 희망을 찾아보는 경유를 보여준 이진욱의 연기에 눈길이 간다. 성 추문에 휘말렸던 시기에 영화를 촬영했기 때문일까. 지나치게 비참해 때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영화 속 상황을 현실감 있게 소화해 냈다. 12일 개봉. ★★★(★ 5개 만점)
장선희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