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밤. 페이스북 메신저가 깜박거렸다. 월요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베트남 대입 시험이 끝난 것이다. 원래 있던 아이들에 더해, 그동안 시험공부를 하느라 바빴던 장학생들이 돌아왔다.
우리나라, 베트남, 캄보디아에서 작은 장학 사업을 하고 있다. 내가 벌고 쓰는 1인 순환 체계다. 장학재단 규모는 못 되지만, 비서가 연간 예산서며 사업계획을 정리해 준 덕분에 대충 모양새를 갖추고는 있다. 가장 큰 프로젝트는 여학생 대상 고등교육 지원 사업이다.
베트남에는 장학생이 여섯 명 있다. 지방 고등학교에서 성적우수 여학생들을 선발해 용돈부터 대학 등록금까지 지원한다. 두 명이 올해 처음 대입 시험을 쳤다. 한 장학생은 영어를 아주 잘한다. 고양이 세 마리와 살고 있다. 다른 한 학생은 문학소녀다. 글을 잘 쓰기로 학교에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러나 문학소녀는 영어를 잘 못 하고 한국의 소설가 언니는 베트남어를 못 한다. 문학소녀와 소설가가 만났지만, 처음에 몇 번 누가 살아있고 누가 죽었는지 헷갈린 다음부터 우리는 구글 번역기가 헷갈리지 않게 단문만 쓰고 있다.
고양이 친구의 어머니는 장애인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근처 농장에서 풀 베는 일을 한다. 문학소녀의 어머니는 거동이 어려운 고엽제 피해 2세대라 집에서 개와 고양이, 닭을 키워 판다. 둘 다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고 한다. 나는 둘 다, 꼭 하노이 같은 대도시의 대학에 진학시키고 싶다. 어머니의 은혜와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
캄보디아에는 대학생 장학생이 네 명 있다. 캄보디아는 식자들이 학살당한 경험 때문에 지방으로 갈수록 교육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크다. 나는 일부러 지방대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는데, 가사를 돕고 부모를 봉양하면서 학교도 다닐 수 있어 여학생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비교적 초봉이 높은 직업을 구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 장래에 대한 기대가 딸을 학비를 들여가며 내보낼 정도는 아닌 집들이 있다. 나는 그 딸들의 학비를 댄다.
시스템이 불완전한 나라에서는 돈이 끝없이 든다. 국내총생산(GDP)이 낮은 나라라 해도 대학 등록금은 저렴하지 않고, 부동산은 0을 잘못 세었나 싶을 만큼 비싸다. 얼마 전에는 캄보디아 장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빌렸는데, 기숙사로 쓸 건물을 사려면 서울에 오피스텔 하나를 살 돈이 있어야 했다. 그만한 돈이 없어 집을 하나 빌려 기숙사로 삼기로 했다. 그것도 상당히 무리였다. 그래도 기숙사를 마련한 것은 장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 봤자 그 다음에 땡볕에 20km를 귀가한 다음 살림을 하고 연로하거나 장애가 있는 부모나 여섯 동생이나 조카를 돌보고 나면 공부할 시간이 없다. 다른 학생들이 함께 모여 공부할 시간에 내 장학생들은 집에 가야 했다.
그래도 장학생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은혜를 갚겠다고 한다. 나는 그 효성에 말을 보태는 대신 캄보디아인 활동가에게 부탁했다. 기숙사로 쓸 건물을 구해 줘. 최대한 대학 근처에. 부모는 그 다음에 설득하자. 우리는 집을 구했고, 7월에 기숙사를 연다.
나는 장학생들의 미래를 대강 짐작하고 있다. 착한 딸들이다. 아마 내가 준 생활지원금도 봉투째 집에 가져갔겠지. 나는 학업 중단의 위험을 막으려 학비를 학교로 직접 보내고 있다. 이들은 아마 취업하는 대로 부모에게 돈을 보낼 것이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퇴직을 하거나 가사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을 구할 것이다. 이 반짝이는 여학생들은 그렇게 사회에서 희미해져 가리라. 그래도, 그래도 이 아이들은 집안의 유일한 대졸자가 될 것이다. 평생 집안에서 개를 팔거나 야자나무 잎을 엮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처럼 눈앞에 그릴 수 있으면서도, 깜박이는 메신저 창을 하나하나 열고 그 삶 바깥에서 말을 건다. 헬로, 마이 디어 스콜라.
이원주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