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러시아 소치의 피시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로아티아와 러시아의 8강전. 크로아티아 골키퍼 다니옐 수바시치(34·AS모나코)는 1-1로 맞선 후반 44분 상대 선수의 슈팅을 막은 뒤 오른쪽 햄스트링에 통증을 느끼고 그라운드로 쓰러졌다. 고통이 상당한 듯 땅을 손바닥으로 세게 치기도 했다. 이미 교체카드 3장을 쓴 상황이라 교체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수바시치는 통증을 참고 다시 일어났다.
연장전까지 120분 동안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들어간 승부차기. 수바시치는 러시아의 첫 키커로 나선 표도로 스몰로프의 슈팅을 그림같이 막아냈다. 수바시치가 먼저 움직이자 스몰로프가 가운데로 공을 찼는데 수바시치가 공중으로 몸을 날린 상태에서 왼손을 뻗어 거짓말처럼 막아낸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승부차기의 신’이라는 별명을 얻은 수바시치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러시아의 세 번째 키커 마리우 페르난지스의 슛이 골대를 살짝 빗나가면서 크로아티아는 4-3으로 승리했다. 맨 오브 더 매치(MOM)는 루카 모드리치(33·레알 마드리드)에게 돌아갔지만 즐라트코 달리치 감독(52)은 “수바시치는 영웅이다. 그가 보여준 승부차기 선방은 매일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라고 극찬했다.
수바시치는 2일 덴마크와의 16강전 승부차기에서도 상대 선수 3명의 슈팅을 막아냈다. 3세이브는 역대 월드컵 한 경기 최다 세이브 공동 1위. 이날 1세이브를 더한 수바시치는 이번 대회에서만 4번째 세이브를 기록하며 역대 월드컵 한 대회 승부차기 최다 세이브 타이기록도 세웠다. 4세이브는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골피커 세르히오 고이코체아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유일하게 세웠다.
수바시치의 신들린 선방을 앞세운 크로아티아는 1990년 아르헨티나에 이어 월드컵 역사상 2경기 연속 승부차기 승리를 거둔 2번째 팀이 됐다. 크로아티아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20년 만에 4강 진출에 성공했다.
34세의 수바시치는 이번 대회가 주전으로 뛰는 첫 월드컵. 어릴 때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스티페 플레티코사라는 거물 골키퍼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후 플레티코사가 은퇴하면서 비로소 주전을 꿰찼다. 그가 11일 잉글랜드와의 4강전에 선발 출전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 그의 몸 상태에 크로아티아의 운명이 걸렸다.
이헌재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