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을 해결할 ‘해결사’로 여겨졌던 왕치산(王岐山·사진) 중국 국가부주석이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 발발했는데도 나서지 않아 배경이 주목된다.
왕 부주석이 미국에 가 협상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으나 중국의 여러 소식통은 10일 “현재로서는 왕 부주석이 미국에 갈 가능성은 낮다. 미중 무역문제 관련 중국 측 협상 대표를 류허(劉鶴) 국무원 부총리가 맡고 있는 상황에서 왕 부주석이 나설 이유가 적다”고 말하고 있다.
올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한국의 국회 격)를 통해 화려하게 복귀한 왕 부주석이 외교·경제 분야 미중 갈등을 조정할 ‘소방대장’으로 기대를 받았다는 점에서 그가 무역전쟁 국면에서 나서지 않는 데는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왕 부주석은 2009∼2012년 부총리 시절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주도하는 등 미국과의 협상 경험이 풍부하고 미국에 상당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부주석 임명 전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와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등 핵심 인사를 잇달아 비공개로 만났다. 부주석 임명 이후에도 미국 기업들의 주요 책임자들과 비공개 회담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미국의소리(VOA) 중문판 표현처럼 미중 무역전쟁의 화살이 활시위에 있는 일촉즉발 상황에서 왕 부주석은 보이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8일 ‘소방대장 부주석이 미국의 무역전쟁 불길을 피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위 서방 외교관을 인용해 “중국이 왕 부주석을 무역전쟁에 투입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앞서 류 부총리가 참여한 5월 워싱턴 2차 미중 무역협상에서 양측은 서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당시 류 부총리는 인터뷰에서 “미중은 무역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밝혔으나 불과 10여 일 뒤 백악관은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다.
이 때문에 류 부총리는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류 부총리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측근으로 통하지만 왕 부주석은 시 주석의 오른팔로 통하는 최측근 중의 최측근이다. 왕 부주석이 대미 협상에 투입돼 류 부총리처럼 실패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시 주석으로 직접 향할 것을 우려한 중국 당국이 왕 부주석 투입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중이 언젠가 협상 테이블에 앉겠지만 이번 무역전쟁은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무역전쟁 여파로 중국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경제가 침체돼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면 중국 당국이 고민스러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