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기자가 찾은 캄보디아 프놈펜의 ‘캄보디아 기록센터(DC-CAM)’ 소장의 사무실 책장과 바닥엔 책이 가득했다. 제목에 적힌 홀로코스트,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같은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육 창 DC-CAM 소장(57)은 “이 책들은 제노사이드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창 소장은 ‘킬링필드’로 상징되는 1975∼1979년 크메르루주 공산정권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자료를 수집해 온 공로로 지난달 26일 ‘아시아의 노벨 평화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비가 쏟아질 때면 비가 나쁜 기억을 모두 씻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39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기억은 얼룩처럼 남아 있어요.” 창 소장 역시 킬링필드의 피해자였다. 크메르루주 정권이 들어선 이듬해, 당시 15세이던 그는 굶고 있는 누이를 위해 버섯을 훔치다 붙잡혀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고문을 당했다. 크메르루주가 학살한 약 200만 명의 양민 중엔 그의 아버지와 형제 5명, 60명 가까이 되는 친척들도 있었다.
그는 “프놈펜의 중산층 집안에서 자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싶었다”며 자료 수집 계기를 설명했다. 1995년 DC-CAM을 설립한 그는 크메르루주 정권과 관련된 수백만 건의 자료와 사진을 모았다. 그는 캄보디아전범재판소(ECCC)에 자료를 제공했고 직접 증언대에도 서 크메르루주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단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는 캄보디아가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젊은이들은 부모로부터 당시 상황을 간접적으로 전해 듣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끔찍한 과거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교육”이라며 “과거의 실패를 배우고 이해해야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는 2009년부터 고교에서 크메르루주 정권 관련 내용을 필수로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전쟁 범죄로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봤다. 그는 “(전쟁 범죄가) 일어나지 않은 척할 수는 없다”며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피해자의 마음이 저절로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힘들어도 희망을 버려선 안 된다”며 “피해자들이 죽어도 기억은 이어지므로 역사를 지워 버릴 순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48년 유엔에서 제노사이드 금지 협약이 채택됐지만 이후 세계가 제노사이드를 예방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세계에 번지고 있는 ‘무슬림 혐오’ 현상과 관련해 “혐오를 방치한다면 사람들은 계속 편견을 갖게 될 것이고 제노사이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과거의 실수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세계 각국이 제노사이드에 대해 교육하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놈펜=위은지기자 wiz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