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기상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뿐 아니라 지구 전체를 폭염이 덮치고 있다. 갑작스러운 기후변화는 사람에게 무력감과 공포감을 준다. 과거에는 이상기후가 닥치거나 기후가 전혀 다른 곳으로 가면 문화의 차이는 생존의 문제였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니 전쟁터라도 추운 곳으로 떠나보자. 1939년 11월 소련군이 핀란드를 침공한다. 이 전쟁을 겨울전쟁이라고 하는데, 북극전쟁이라고 해도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소련군에 추위는 문제 되지 않았다.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러시아 침공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가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였다. 그러나 막상 핀란드 땅에 들어서자 상황이 달랐다. 북극권의 추위에 동사자가 속출했다. 보드카도 소용이 없었다. 눈 덮인 대지는 땅과 호수를 구분할 수 없고, 침엽수림은 길을 잃게 했다.
반면 핀란드인은 추위 속에서 끄떡없이 잠복을 하고, 저격수는 소련군을 쏘아 넘겼다. 가장 황당한 것은 스키였다. 핀란드 스키부대는 게릴라전을 시도하며, 종횡무진 활약을 펼쳤다. 소련군의 스키는 거친 핀란드 땅에서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핀란드군은 약한 소련군 스키를 비웃으며 노획한 스키를 땔감으로 썼다.
추위와 지형에 적응하지 못한 소련군은 1차 전쟁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그래도 워낙 전력 차가 크고 소련군 자체의 전술적 결함도 있었던 만큼 소련군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침공해 오자 핀란드는 고전했다. 결국 영토 일부를 할양하는 협정을 맺는다. 그러나 핀란드의 영웅적인 저항으로 소련도 핀란드를 병탄하거나 위성국으로 만들지 못했다.
핀란드의 영광은 추위 덕분이었을까? 독일의 지원도 무시할 수 없지만, 더 대단했던 것은 모처럼 찾은 독립을 결코 잃지 않겠다는 핀란드인의 불굴의 투지였다. 1917년 독립한 핀란드는 12세기 중반부터 스웨덴과 러시아의 오랜 지배를 받았다. 소련도 전쟁을 치르면서 이런 나라는 땅도 사람도 다스리기 힘들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 같다. 국가를 유지하려면 물리적, 정신적 저항력 중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역사학자
이원주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