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 소년’에서 한국 남자 피겨의 기대주로 성장한 차준환(17·휘문고)이 여자 피겨스타 김연아(29)처럼 ‘개척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차준환은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피겨 최강자들이 출전하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메달을 따냈다.
시즌 그랑프리 6개 대회 성적을 합산해 상위 6명만 출전하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한국 선수가 메달을 딴 건 2009년 김연아(당시 금메달) 이후 9년 만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회가 열린 곳은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캐나다 밴쿠버다. 현재 차준환은 당시 김연아를 지도했던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다. 차준환은 “(한국 남자 피겨의) 개척자라는 부담을 내가 좀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차준환은 8일(한국 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마무리된 2018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 싱글에서 총점 263.49점으로 동메달을 따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89.07점,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선 개인 최고점인 174.42점을 받았다.
어릴 적 초코파이 모델을 했던 차준환은 표정 연기 등 표현력이 좋다. 그러나 고난도의 기술을 구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차준환은 이날 첫 점프인 쿼드러플(4회전) 토루프 점프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나 동요하지 않았다는 듯 오른손으로 빙판을 짚고 일어서 이내 다음 쿼드러플 살코 점프를 안정적으로 성공했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OST에 맞춰 프리스케이팅을 선보인 그는 4분 10여 초의 연기를 마친 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뒤 자신과 같은 보라색 상의를 입은 수호랑 인형을 든 채 키스 앤드 크라이존으로 빠져나왔다.
지난 시즌 차준환은 신는 부츠마다 발목 부분이 쉽게 접히는 문제가 생겨 점프 후 착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발목 부상까지 겹치면서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소속사 관계자는 “부상 방지와 체력 강화에 집중했다. 현재 착용 중인 부츠도 (발목 부분이 접히는) 문제가 없다. 부상 없이 점프를 한결 수월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ISU의 규정 개정도 차준환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ISU는 올 시즌 난도가 높은 쿼드러플 점프의 기본 점수를 낮추고 수행점수 범위도 기존 7개 등급에서 11개 등급으로 넓혀 가점 및 감점 폭을 넓혔다. 선수들이 고득점을 위해 4회전 점프에만 집중하는 현상을 막고, 예술성에 집중하게 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4회전 점프가 적은 차준환은 그 대신 자신의 강점인 예술요소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비행기로 이동할 때도 끊임없이 프로그램 음악을 들으면서 곡 해석 능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설명이다.
이날 우승은 ‘점프머신’ 미국의 네이선 첸(282.42점), 준우승은 일본의 우노 쇼마(275.10점)가 차지했다.
차준환은 11일 귀국해 21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회장배 랭킹대회에 출전한다.
강홍구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