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을 그린 화가는 많다. 화가는 종종 자신의 심리나 위상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자화상을 그리곤 한다. 그런데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유딧 레이스터르는 자신의 자화상을 자화상으로 인정받는 데 수백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레이스터르가 21세 때 그린 이 자화상은 지난 수백 년 동안 당대 거장 프란스 할스의 그림으로 잘못 알려졌었다. 이유는 할스 스타일을 닮은 너무나 뛰어난 걸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림 속 화가는 이젤 앞에 앉아 관객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표정은 밝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오른손엔 붓을, 왼손에는 팔레트와 천, 10여 개의 붓을 동시에 잡고 있고, 이젤 위에는 작업 중인 그림이 세워져 있다. 풍성한 볼륨의 드레스 치마와 지나치게 크고 둥근 칼라, 소맷부리에 달린 고급 레이스 장식까지 작업복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화려한 의상이다. 이는 화가 자신의 부와 성공을 드러내는 상징이자 정교한 레이스 장식까지 완벽하게 표현해내는 기술적 역량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현대의 프로필 사진 같은 자화상인 것이다.
사실 레이스터르는 19세 때부터 대중의 찬사와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은 하를럼(노르트홀란트주의 주도)의 스타 작가였다. 당시 저술가들은 그를 ‘선하고 예리한 통찰력의 화가’, ‘예외적으로 뛰어난 진정한 미술의 스타’로 묘사하며 극찬했다. 여성 예술가가 드물었던 시절, 아버지를 이어 화가가 된 그는 24세 때 화가 조합인 ‘성 누가 길드’에 등록해 독립된 장인으로 활동했던 하를럼 최초의 전문 여성 화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들은 후대 미술사가들의 편견과 오판으로 같은 길드 소속의 거장 작품으로 여겨졌었다. 1929년 이 그림이 미국인 컬렉터에게 25만 달러에 팔릴 때도 판매 도록에는 할스의 ‘예술가의 딸’이란 제목으로 적혀 있었다. 1949년 보스턴 국립미술관에 소장되면서 비로소 레이스터르 그림으로 인정받고 제목도 ‘자화상’으로 변경되었다. 작가 사후 289년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