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존립 치명적 상황” 떠나는 르노삼성 창립멤버의 호소

　르노삼성자동차의 이기인 전 부사장이 12일 ‘부산공장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손편지를 써 전 직원에게 보냈다. 그는 “우리는 국내 본사에 소속된 공장이 아니라 외국계 기업에 소속된 하나의 자회사에 불과하다. 현재의 불안정한 상황은 우리의 고용과 회사의 존립에 치명적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썼다. 노사 갈등이 계속되면 한국 회사가 아닌 르노그룹이 언제든 철수할 수 있다는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는 마지막 당부를 남긴 것이다.

　회사 창립 멤버로 26년간 근무해온 이 전 부사장이 노사분규 장기화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낼 만큼 르노삼성은 최장기간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조합은 지난해 10월부터 현재까지 58차례 234시간의 부분파업을 벌였고, 이로 인한 매출 손실만 2400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장기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빚어지자 최근 일본 닛산은 르노삼성에 위탁했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로그의 생산물량을 10만대에서 6만대로 줄인다고 통보했다. 르노 본사 또한 한국에 배정하려던 유럽 수출용 신차 물량을 스페인 공장에서 생산키로 가닥을 잡고 있다. 급기야 사측은 이달 말부터 닷새간 부산공장 가동을 중단(셧다운)하기로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조는 당초 요구해온 임금 인상에 더해 인력 전환배치 등의 문제를 노사 합의 사항으로 바꾸자는 추가 요구안을 내놓으며 강경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투쟁 강도를 높이기 위해 민주노총 가입까지 추진하고 있다. 셧다운을 넘어 공장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를 위기가 몰려오는데 노조는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하다. 국내 완성차업체 중 지난해 임·단협을 끝내지 못한 곳은 르노삼성이 유일하다.

　르노삼성의 노사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부산·경남지역 협력업체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미 납품 물량이 최대 40%까지 줄어 조업을 단축하거나 중단하는 협력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노조는 “하루라도 빨리 이 사태를 해결하는 것만이 임직원과 많은 협력사 직원들의 고용과 회사의 미래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이 전 부사장의 호소를 새겨들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군산공장 폐쇄로 간 한국GM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