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홍콩 시위를 정권교체 운동을 가리키는 색깔혁명이라고 처음으로 규정했다. 이를 두고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는 이번 주말을 고비로 홍콩에 대한 군대 투입 등 무력 개입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 장샤오밍(張曉明) 주임은 7일 홍콩과 맞닿은 광둥(廣東)성 선전(深(수,천))시에서 열린 비공개 좌담회에서 “‘범죄인 인도법’ 사건은 이미 변질됐다. 색깔혁명의 특징을 분명하게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좌담회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한국의 국회에 해당) 대표,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국가자문기구) 위원 550명이 참석했다.
장 주임은 “현재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가장 심각한 국면”이라며 “홍콩 사태가 더 악화되고 홍콩 정부가 동란을 통제하지 못하면 중앙(중국 정부)은 결코 좌시하거나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홍콩 기본법에 따라 중앙은 신속하게 각종 동란을 진입할 충분한 방법과 강대한 힘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공산당의 의도와 속내를 해석해온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 소셜미디어 공식 계정인 샤커다오(俠客島)는 “중국 당국이 처음으로 홍콩 시위가 색깔혁명이라고 판단했다”며 이를 중국 당국이 홍콩 시위대에 보낸 매우 명확한 신호라고 밝혔다. 색깔혁명은 사회주의권 진영이 붕괴하던 1990년대부터 옛 소련 국가와 동유럽, 중앙아시아, 중동 등에서 일어난 정권교체 운동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이끄는 지도부는 올해 초 색깔혁명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자오커즈(趙克志) 중국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은 올해 1월 전국 공안(경찰) 간부들을 모은 뒤 “모든 공안의 지혜와 힘을 모아 색깔혁명을 막아야 한다. 내외 적대세력이 각종 전복 파괴활동에 침투하는 걸 타격하라”고 지시했다. 중국 당국이 홍콩 시위를 색깔혁명으로 규정하자 무력을 동원한 전면 개입 신호라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공교롭게도 좌담회 하루 전인 6일 선전시에서 홍콩 시위대를 가정한 대규모 폭동 진압 훈련이 벌어졌다.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장 주임은 덩샤오핑(鄧小平)이 과거 “필요하면 홍콩에 중국군이 투입될 수 있다”고 말한 데 대해 “덩샤오핑이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말했다. 장 주임과 함께 좌담회를 진행한 왕즈민(王志民) 중국 홍콩연락판공실 주임은 “홍콩이 이미 후퇴할 곳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혼란을 통제해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급박하며 홍콩 앞날과 운명의 생사를 건 전쟁이고 보위(保衛)전”이라고 주장했다.
8일 환추(環球)시보 등 중국 매체들은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인 우산혁명 지도자 조슈아 웡, 네이선 로 등이 6일 주홍콩 미국총영사관 관계자를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며 미국이 홍콩 문제에 간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이 실제 군대를 동원한다면 미국 등 외부 세력이 개입해 홍콩에서 정권 전복 운동이 일어났다는 점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미국과 무역 관세 환율 등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첨예한 갈등전선을 만들면 중국 지도부에게 추가적인 부담이 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지적도 나온다.
윤완준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