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었고, 신기했고, 행복했다.”
29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임성재(21·CJ대한통운)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의 여운이 느껴지는 듯했다.
올해 PGA투어에 데뷔한 임성재는 페덱스컵 포인트 상위 30명만 나갈 수 있는 투어 챔피언십에 신인으로는 유일하게 출전했다.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도 밟지 못한 무대에 당당히 서서 19위로 2018∼2019시즌을 마감한 그는 선수 투표로 뽑는 신인왕 0순위로 꼽힌다.
그는 “우즈는 없어도 다른 대단한 선수들은 모두 있더라. 이번 시즌 목표가 투어 챔피언십 진출이었는데 꿈을 이뤘다. 몇 년 전까지 TV에서만 보던 선수들과 같은 필드에 선 게 너무 신기했다”며 웃었다. 긴 시즌을 마친 임성재는 요즘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머물며 모처럼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2주간의 짧은 휴식을 마친 뒤 9월 12일 시작되는 밀리터리 트리뷰트로 2019∼2020시즌을 시작한다.
○ 임성재가 꼽은 ‘투 샷(Two Shots)’
임성재는 이번 시즌 35개 대회를 뛰었다. 출전 자격이 있는 거의 모든 대회를 쉬지 않고 나간 셈이다. 임성재는 “어릴 적부터 꿈꿨던 PGA투어이다 보니 모든 대회가 아까웠다. 나갈 때마다 성적이 나고, 그에 따른 상금이 들어오는 것도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26차례 컷을 통과해 285만1134달러(약 34억7000만 원)의 상금을 받은 그는 “따로 집을 구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대회가 열리는 호텔을 돌아다녔다. 마치 여행을 하듯 재미있게 투어를 다닌 것 같다”고 말했다.
임성재는 첫 대회였던 2018년 10월 세이프웨이 오픈에서 공동 4위에 오르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뭔가 잘될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은 올 3월에 열린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었다. 그 대회 2라운드 13번홀에서 그는 미국에 온 뒤 처음으로 홀인원을 했다. 152야드 거리에서 8번 아이언으로 친 공이 백스핀을 먹고 홀 안으로 떨어졌다. 임성재는 “비록 그 대회에서 컷 탈락했지만 이후 술술 잘 풀렸다. 무엇보다 꾸준하게 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가 꼽은 또 하나의 ‘더 샷’은 플레이오프 2차전인 BMW챔피언십 4라운드 7번홀(파5) 이글이다. 임성재는 “4라운드에 들어갈 때까지 투어 챔피언십 진출이 아슬아슬했다. 침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다. 그런데 그 홀에서 친 로브 샷(높이 띄워 치는 어프로치 샷)이 이글로 연결되면서 진출할 수 있었다”고 되돌아봤다.
○ “행운도 실력이다”
임성재는 “난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PGA 웹닷컴투어(2부 투어·현 콘 페리투어) 첫해 곧바로 PGA투어 시드를 딴 게 대표적인 예다.
웹닷컴투어는 PGA투어 우승 경험자가 득실거리는 무대다. 그런데 임성재는 웹닷컴투어 데뷔전인 지난해 1월 바하마 클래식에서 덜컥 우승했다. 그는 “모든 샷이 정말 마음먹은 대로 됐다.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했다. 다음 대회 준우승을 하면서 그는 단 2개 대회 만에 PGA투어 시드를 거머쥐었다. 국가대표→일본 투어→PGA 2부 투어→PGA투어→투어 챔피언십 진출 등 바랐던 모든 게 현재까지 순조롭게 이뤄졌다.
임성재의 다음 시즌 목표는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과 투어 챔피언십에 또 한 번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강점인 드라이버와 롱 아이언을 유지하면서 다소 약했던 쇼트게임을 보완해야 한다. 그는 “우드보다 드라이버가 더 편하다. 장타자는 아니지만 정확하게 보내는 건 자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올 시즌 드라이버 평균비거리는 295.9야드로 공동 81위였다.
이헌재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