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0시 경기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만난 1990년생 코끼리 ‘코식이’는 높이 4m에 설치된 ‘도르래’에 코를 뻗어 그 안에 있는 건초를 계속해서 입으로 옮겨 넣었다. 지난달 마련된 이 장치는 코끼리가 바닥에 있는 먹이만 먹을 경우 코의 근육이 굳어지는 증상을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코 근육 발달을 유도하고 코를 들었을 때 입안과 치아 건강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어 코식이는 20m가량 떨어진 인공 구조물 속에 숨겨진 먹이를 찾으러 이동했다. 인근에서 목욕을 즐길 수 있는 웅덩이까지 타원형 형태로 걷다 보면 코식이의 이동 거리는 금세 40m가 넘게 된다. 한정된 공간에서 동물 활동량을 늘리기 위한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하루 일과를 마친 코식이는 실내 숙소에서 발톱부터 귀까지 세심한 관리를 받는다. 기본 식사 외에 종합 비타민과 칼슘을 먹고, 치아 건강을 위해 생대나무도 종종 씹는다. 박정욱 코끼리 담당 사육사는 “수의사와 정기 건강검진을 진행하고, 대소변을 통해 꾸준히 몸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원을 단순한 ‘전시관’이 아닌 ‘안전한 서식지’로 발전시키려는 에버랜드의 노력이 성과를 내고 있다. 전 세계 최고 수준의 동물 복지 운영 시스템을 갖춘 곳만 받을 수 있는 ‘미국 동물원·수족관 협회(AZA)’ 인증을 이달 8일 에버랜드 동물원이 획득한 것. AZA 인증을 받은 곳은 북미 2800여 개 동물기관 중 10%가 되지 않는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에버랜드·서울대공원),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 총 5곳만 있을 정도다.
1976년 설립 후 40여 년간 운영 노하우를 쌓아온 에버랜드는 동물 복지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AZA 인증을 신청했다. AZA 관계자들의 현장 실사에 대비하기 위해 에버랜드는 2017년부터 AZA 인증 준비를 했다. 대기업 인사 시스템과 견줄 만한 동물 개체별 기록관리 시스템 ‘ZIMS’를 도입하고 동물별 맞춤 관리 역량을 끌어올렸다. 이른바 ‘족보’를 토대로 번식 시 유전 결함을 최소화하고, 자연 포육 여부, 집단생활 경험 등을 고려해 동물의 스트레스를 줄여줬다.
이날 에버랜드 동물원에선 동물 복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기린 담당 사육사는 구멍 뚫린 원형 통부터 벌집 모양의 통 등을 여러 종류로 갖고 있었다. 기린이 40∼50cm에 달하는 긴 혀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기 위한 놀이기구였다. 혀를 자꾸 움직여야 침 분비가 많아져 소화가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기린의 실내 숙소 벽에는 등을 스스로 긁을 수 있는 효자손도 붙어 있었다. 정우주 기린 담당 사육사는 “기린이 새로운 놀이기구에 금방 질리기 때문에 월별, 주별로 계획표를 짜서 변화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판다는 동물원 최고의 VIP 대접을 받고 있었다. 러바오(2012년생), 아이바오(2013년생) 등 단 2마리의 자이언트판다를 위해 7000m² 넓이의 부지를 확보했고, 별도의 건강검진실과 분만실까지 갖춰져 있었다. 신선한 대나무만 골라 먹는 러바오와 아이바오를 위해 일주일에 두 번 경남 하동에서 총 800kg의 대나무가 공수돼 냉장실에 보관된다. 매일 대소변 양과 수면 시간을 확인하며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호랑이 사자 곰 등 맹수들을 위한 시도도 눈에 띄었다. 나무로 된 잠자리를 별도 제작해 건강관리를 돕고, 뒷다리 근육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었다. 닭가슴살 안에 영양제를 숨겨 넣고, 음수대에 전해질을 풀어 넣어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게 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노쇠한 맹수를 위해 소 생간 등 별식을 구해 먹이기도 한다.
에버랜드는 멸종위기종 보존과 번식 면에서도 AZA로부터 인정받았다. 에버랜드 동물원에는 현재 140여 종, 1600여 마리의 동물이 있는데, 국제적 멸종위기종(CITES) 1, 2급만 80여 종으로 전체의 60%에 달한다. 이 중 지난 5년간 번식한 멸종위기종은 10여 종, 30여 마리다. 에버랜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치타, 황금원숭이, 황금머리사자타마린 등의 번식에 성공했다.
에버랜드는 2004년부터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학습 프로그램 ‘동물사랑단’을 운영해 왔다. 매년 2500여 명의 어린이들이 사육사와 함께 동물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윤승희 에버랜드 동물원 수의사는 “동물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동물을 보는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면서 “멸종위기종을 보호하고 동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울 수 있는 안전한 서식지로서의 기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신희철기자 hc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