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당직실의 전화벨이 5분이 멀다 하고 울렸다. 수화기를 집어든 간호사가 수차례 했던 답변을 되풀이했다. “죄송한데 지금 빈 베드(병상)가 없어서 환자를 더 못 받아요.” 아닌 게 아니라 중증외상 환자를 진료하기 위한 병상 100개에 환자가 가득 들어찬 채 빈자리가 나지 않아 소방청에 “더 이상 환자를 보내지 말아 달라”는 뜻의 ‘바이패스’를 통보한 상태였다. 국내 최대 규모와 인력을 갖춘 권역외상센터의 지난달 27일 오후 3시경 모습이다.
이국종 외상외과 교수가 이끄는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경기 과천시와 성남시, 부천시 등 21개 시군을 아우르는 경기 남부 권역에서 중증외상 환자를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의료기관이다. 인근 응급실이 전부 일손도, 장비도 없다며 환자를 돌려보낼 때 권역외상센터가 환자의 ‘골든타임’을 지킬 최후의 보루가 된다.
그런데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올 들어 지난달 30일까지 총 57차례나 ‘바이패스’를 걸고 환자를 받지 못했다. 바이패스가 걸렸던 시간을 모두 합하면 34일 2시간 57분이다. 경기 남부 권역의 인구 970만 명을 책임지는 권역외상센터가 한 달 넘게 문을 걸어 잠가야 했다는 뜻이다. 2017년 11차례였던 바이패스 통보 횟수가 지난해 53차례로 늘자 센터 내에선 “이제 우리 센터는 권역외상센터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1년 만에 상황이 더 나빠졌다.
이는 ‘병상 돌려쓰기’가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기존엔 권역외상센터 병상이 부족하면 다른 진료과목의 병상이라도 빌려 환자를 받곤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다른 진료과목에서도 병실 부족을 호소하며 병원 측이 이를 차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병원 일부가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며 병상이 더 부족해졌다. 한 센터 관계자는 “병원 측이 2013년 권역외상센터를 유치하겠다며 보건복지부에 사업계획서를 낼 땐 분명히 ‘시설과 인력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서약서까지 썼는데…”라며 한탄했다.
악순환이다. 권역외상센터에 입원하지 못한 중증외상 환자들은 우선 다른 소규모 응급실에 입원한다. 수십 시간이 지나 권역외상센터에 빈자리가 생기면 그 환자가 뒤늦게 중증외상 전문 치료를 받는다. 초기에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한 탓에 예후가 나쁘다. 해당 환자는 회복하기 위해 더 오랜 기간 권역외상센터에 입원해야 한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그나마 전국 14곳인 권역외상센터 중에 병상이 가장 많다. 다른 곳이 어떤지 복지부는 실태 파악도 하지 않고 있다. 올 2월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과로사로 응급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 정부는 각종 협의체를 만들며 대책과 지원을 약속했다. 윤 센터장이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