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로운 나라를 개척하러 떠났다. 최초로 보았고, 편견 없이 보았다. 나는 신비의 베일로 뒤덮여 있고 2000년 전부터 모든 유럽인에게 닫혀 있던 땅을 밟게 될 것이다.” 나폴레옹과 함께 이집트 원정대에 합류했던 학자 도미니크 비방 드농의 육성이다. 50대였던 드농은 특별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유럽의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랬기 때문에 ‘미지의 문명이 주는 새로운 지식의 힘’에 대해서 알았고, 그 유혹이 나이와 원정의 위험을 이겨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나폴레옹은 1798년 이집트 원정을 시도하면서 인문학자, 과학자 등으로 구성된 탐사단을 만들었다. 그는 권위 있는 학자들이 참여해 주기를 바랐지만, 이미 명성이 높은 사람들은 전쟁과 역병이 기다리고 있는 모험을 거부했다. 거창한 명칭과 달리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평균 25세 정도의 젊은이들이었다. 나폴레옹도 겨우 29세였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 왜 이들을 데려갔는지는 수수께끼다. 1796년 이탈리아 방면군 사령관이 된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원정에서 대승리를 거두었다. 프랑스 국민들은 승리에 열광했지만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에서 엄청난 돈과 예술품을 약탈해 정부에 바쳤다. 약탈도 효과적으로 하려면 학문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쟁 영웅 이상의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나폴레옹은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고, 자기 자신을 이집트를 정복했던 알렉산드로스, 로마의 황제와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병사들의 사기는 폭락했다. 여기에 페스트가 프랑스군을 덮쳤다. 나폴레옹은 일생일대의 모험을 한다. 야파의 야전병원을 방문해 병사들을 위문하고 페스트 환자와 악수까지 했다. 병원을 나서자마자 멀리 도망쳤지만, 이 장면은 장대한 유화로 그려져 오랫동안 선전됐다. 나폴레옹이 페스트에 전염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권력을 향한 나폴레옹의 용기를 칭찬해야 할까? 순진했던 병사들을 동정해야 할까?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