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자국민에게 1000달러 이상의 현금을 지급하는 등 1조 달러 이상을 쏟아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현금 지급을 검토하는 등 세계 각국이 재정을 풀어 경제위기 진화에 나섰다.
○ 미 현금 1000달러 이상 지급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17일(현지 시간) 의회에서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을 만나 추가 경기부양책을 설명한 뒤 기자들에게 “큰 숫자다. 1조 달러를 경제에 투입하는 제안을 테이블에 올려놨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뉴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세금 납부 연기 효과까지 고려하면 규모가 1조2000억 달러(약 15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했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09년 2월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추진했던 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능가하는 규모다.
이 가운데 4월과 5월 두 차례 미국인에게 1000달러(약 125만 원) 이상의 현금 지급을 위한 예산으로 5000억 달러(약 625조 원)가 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므누신 장관은 100만 달러 넘게 버는 부자는 현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어 소득에 따른 선별 지급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급여세(근로소득세) 인하에는 몇 개월이 걸린다”며 “그보다 빨리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며 현금 지급을 거론했다.
또 소기업 지원을 위한 3000억 달러, 항공사 호텔 등 코로나19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업계 지원을 위해 2000억 달러가 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도 현금 지급을 준비 중이다. 마이니치신문은 18일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이 4월 발표할 긴급경제대책으로 전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조정하고 있다”며 “2009년에 지급했던 1인당 1만2000엔(약 14만 원)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총액은 2조 엔(약 23조 원) 이상으로 검토하고 있다. 2009년에 현금을 지급했을 때 일본인들이 받은 돈을 저축하는 바람에 소비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코로나19 위기 앞에서 다시 ‘현금 카드’를 꺼냈다.
○ 경기 침체 막기 위해 중국 건설 붐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돈 풀기에 나선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 위기가 예상보다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므누신 장관은 이날 공화당 상원의원들에게 경기부양책을 설명하면서 정부 개입이 없을 경우 실업률이 3.5% 수준에서 20%까지 치솟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경기침체를 기정사실로 보고 올해 세계 경제가 0.9% 성장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19의 진원지인 중국의 2월 도시 실업률은 최악인 6.2%로 실직자가 500만 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드만삭스는 중국의 1분기(1∼3월)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동기 대비 9%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에서도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처음 나왔다.
중국은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경기 둔화 심화 때만 해도 건설 붐을 통한 무리한 경기 부양책은 피하겠다고 밝혔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가 심각해지자 건설을 통한 경기 부양에 나섰다. 리커창(李克强) 총리 주재로 국무원 상무회의를 개최해 지방채권 발행을 늘려 건설 붐을 일으키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경제매체 제몐(界面)은 “올해 (건설을 위한) 특수목적 채권 전체 규모가 2조9000억 위안(약 514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관측했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독일재건은행(KfW)을 통해 피해 기업에 대한 무제한 유동성 제공을 약속하며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시사하는 등 각국이 재정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17일(현지 시간) 3300억 파운드(약 496조 원) 규모의 정부 보증 대출 계획을 발표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유로존 각국이 재정 투입을 검토할 것으로 보이나 재정 규약을 크게 웃도는 수준은 어려울 것”이라며 “재정이 열악한 국가는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 자금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박용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