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따뜻한 곳에 사는 사람에게 봄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긴 겨울의 추위를 견뎌본 사람에게만 간절하다. 평생 광기와 고독 속에 살았던 빈센트 반 고흐에게 대도시 파리에서의 삶은 유난히 혹독하고 추웠다. 결국 그는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따뜻한 햇볕과 활기찬 색을 찾아 프랑스 남부 아를로 향했다.
1888년 2월 20일 고흐는 기대와 달리 하얀 눈으로 덮인 아를에 도착했다. 몇 주가 지나자 거짓말처럼 봄이 찾아왔고, 과수원의 나무들은 금세 꽃으로 뒤덮였다. 꽃이 핀 과일나무에 매료된 고흐는 이 장면들을 열정적으로 화폭에 담았다. 4월 초부터 한 달 동안 14점의 연작을 완성했다. 그중 가장 먼저 그린 이 그림은 분홍색 살구나무 꽃이 핀 과수원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제 막 봉오리를 맺기 시작한 것도 있지만 나무엔 꽃이 활짝 폈다. 빠른 필치와 밝고 다채로운 색의 사용, 스냅 사진 구도 등 전형적인 인상주의 기법으로 그려졌지만 햇빛을 받아 불꽃처럼 반짝이는 꽃잎 묘사는 고흐만의 감각적인 표현이다. 꽃이 만발한 과수원 그림은 고흐에게 열정과 활기를 되찾아 주었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 ‘모든 사람에게 활력을 주는 주제 중 하나’라며 이 그림들이 잘 팔리기를 희망한다고 썼다.
봄 그림은 팔리지 않았지만 아를 시절은 고흐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봄이었다. 비극적으로 끝나긴 했지만 좋아했던 폴 고갱과 공동생활을 하며 행복했고, 왕성한 창작욕으로 200여 점의 그림을 완성했다. 여전히 조울증에 시달렸고, 자신의 귀를 자해하는 극적인 사건도 겪었지만 아를에서 생애 최고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꽃이 피는 화려한 시기는 잠깐이다. 테오에 따르면 고흐는 “항상 남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37년의 짧은 삶을 불꽃처럼 살다 갔지만, 그는 우리에게 영원한 봄을 선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림 속 활짝 핀 꽃들은 생전의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행복과 희망의 꽃은 아닐까.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