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어른의 가슴속에는 자라지 못한 아이가 살고 있다.’ 이희영 작가의 소설 ‘페인트’에 나오는 말인데, 국가가 설립한 양육센터에 사는 열일곱 살짜리 고아 화자가 ‘부모 면접’을 하는 과정에서 속으로 하는 생각이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모 면접이라는 낯선 개념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입양의 주체는 아이가 아니라 예비 부모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걸 뒤집는다. 여기에서 선택의 권리는 예비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있다. 아이들이 사전에 녹화된 예비 부모의 영상물을 보고 면접을 허용할지 결정한다. 그리고 입양은 몇 차례에 걸친 면접 결과에 달려 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페인트’는 아이의 입장에서 자신과 예비 부모의 서로 다른 색깔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가늠하는 ‘부모 면접’에 대한 은어다. 선택 받은 예비 부모에게는 국가가 보장하는 복지 혜택이 주어진다. 면접을 신청하는 예비 부모들이 많은 이유다.
화자는 지난 4년간 여러 번 부모 면접을 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자식을 원하는 진실한 마음이 없으면서도 혜택만을 바라는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실망한 탓이다. 그런데 이번에 면접을 신청한 예비 부모는 사뭇 다르다. 그들에게는 어렸을 때 부모에게서 받은 깊은 상처가 있다. 그래서 아이도 낳지 않았다고 한다. 화자가 ‘어른의 가슴속에는 자라지 못한 아이가 살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자는 지금까지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어른이면서도 아이나 다름없는 그들이야말로 부모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그런 자리에서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가. 솔직하다는 말은 상대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말이고, 상처를 얘기한다는 말은 그 상처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러한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면접을 하면 우리 부모는 어떤 점수를 받을까. 반대로, 우리 자식이 면접을 하면 우리는 어떤 점수를 받을까.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