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연수 중이던 2018년 초등학생 아들의 학교일정표를 보니 1월 15일이 ‘빨간 날’(공휴일)이었다. 무슨 날인가 싶어서 들여다보니 ‘마틴 루서 킹 데이’였다. 킹 목사의 생일인 1월 15일을 기리기 위해 미국에서는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휴일로 정했는데 2018년에는 마침 1월 셋째 주 월요일이 15일이었다.
킹 목사가 미국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생일을 공휴일로 기념할 정도인지는 몰랐다. 미국에서 탄신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인물로는 초대 대통령이자 국부로 추앙받는 조지 워싱턴, 미국인 시각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인물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있다. 킹 목사가 미국에서 이들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킹 목사의 가장 큰 업적은 물론 미국 흑인들의 인권을 증진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1955년 버스 내 인종차별 문제를 계기로 킹 목사는 흑인 사회의 힘을 모아 흑백분리법 폐지 운동을 벌였고 성공했다. ‘버스 안 타기 운동’ 등 비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이뤄냈기 때문에 더욱 값진 성과였다. 그래서 백인들도 킹 목사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요즘 미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거세다. 흑인 조지 플로이드 씨를 백인 경찰이 무릎으로 짓눌러 숨지게 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처음 봤을 때 먼 외국에서 벌어진 일인데도 소름이 끼쳤다. 플로이드 씨는 의식이 가물거리는 상태에서 “숨을 쉴 수 없다”며 웅얼거렸고 주변 시민들이 항의해도 단호한 표정의 경찰은 꿈쩍하지 않았다. 수갑을 찬 채 9분 가까이 목이 눌렸으니 거구의 남성도 견뎌내지 못했다.
흑인들의 가슴에는 이미 분노가 쌓인 상태였다. 최근 미국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보더라도 조깅을 하던 흑인 청년을 백인이 총으로 쏘고, 교통신호를 위반했다고 해서 경찰이 흑인 청년에게 총을 겨누는 일이 있었다. 미국 20대 흑인 남성의 사망 원인 2위가 경찰의 무력 사용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 미국을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에 흑인들이 집중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 내에서 흑인들이 먹고살기 어렵다는 점을 반영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기도, 제때 치료를 받기도 어려웠다. 2018년 기준 흑인 가구의 평균 소득은 백인 가구의 3분의 2 수준이다.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흑인 비율은 미국 전체 평균보다 10%포인트 낮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불을 끄기는커녕 거듭 ‘강경 진압’을 외치고 시위대를 모욕하면서 분노를 부추겼다. 2016년 대선에서 흑인 표의 9%밖에 얻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11월 대선에서 흑인 표는 포기하고 백인 표를 모으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미국 사회의 반응을 보면 그의 전략이 성공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이런 이유들로 흑인들이 분노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시위를 통해 표출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렇지만 경찰차를 불태우고, 경찰관을 향해 총까지 쏘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폭력시위를 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겠지만 그렇다고 ‘소수의 일탈 행위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는 없다. 그 일부분이 전체 시위의 성격을 규정짓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응집된 민심의 힘으로 입법이나 행정을 통해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궁극적으로는 투표를 통해서 뜻을 관철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다. 폭력은 시민들의 뜻을 모으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다행히 시위 양상이 점차 안정화되면서 폭력은 줄어들고 있다.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는 것은 폭력을 증폭시킬 뿐이고, 별조차 없는 밤하늘에 깊은 어둠을 더할 뿐”이라는 킹 목사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