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 프리 영화’는 시청각장애인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고 비장애인은 코멘터리를 듣는 기분으로 새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간신’ 등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50·사진)이 말했다. 장벽 없는 영화라는 뜻의 배리어 프리 영화는 시청각장애인이 볼 수 있게 영상과 소리를 음성으로 설명하고 대사는 자막으로 해설한다.
민 감독과 ‘감쪽같은 그녀’의 허인무 감독, 오하늬 배우, 시각장애인 아나운서 이창훈이 23일 서울 중구 현대오일뱅크 사옥에서 배리어 프리 영화를 주제로 토크쇼를 열었다. 현대오일뱅크 현대중공업 등의 직원들이 급여 1%를 기부하는 ‘현대중공업그룹 1%나눔재단’의 지원으로 올해 ‘감쪽같은 그녀’와 애니메이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가 배리어 프리 영화로 탄생했다. 재단은 매년 영화 2, 3편을 배리어 프리로 제작하도록 지원하고 토크쇼 영상은 전국 맹학교에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민 감독은 윤제균 감독과 함께 2018년부터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를 맡아 배리어 프리 영화 제작을 위한 재능기부를 독려하고 있다. 민 감독은 농담처럼 “감독조합 대표를 맡아 주로 하는 게 중개업”이라며 웃었다.
민 감독도 2014년 한지민 배우와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 아이’를 배리어 프리로 제작했다. 민 감독은 “장면에 담긴 모든 걸 해설할 수 없기에 핵심을 뽑느라 고민했다. 의미를 잘못 전달할까 봐 걱정도 되고…. 바람이 솔솔 부는데 어느 정도 세기로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묘사하는 것도, 음악을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액션 장면이나 화면 전환이 빠른 경우 사람이 많이 나오는 장면도 말로 옮기는 게 까다롭다. 그는 “그럼에도 시각과 청각을 언어화하며 묘한 쾌감을 느꼈다. 좋아하는 영화를 찬찬히 다시 음미하는 것도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허 감독은 “‘감쪽같은 그녀’를 배리어 프리로 만들며 놓쳤던 포인트를 다시 풍성하게 살려내는 신선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 아나운서는 “중학생 때 ‘공동경비구역 JSA’를 배리어 프리로 봤다.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각 장면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어 정말 놀라웠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한 해 상영되는 영화는 1700여 편이지만 배리어 프리로 제작되는 건 30편가량으로 2%가 채 되지 않는다. 사단법인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2011년부터 매년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를 열고 있다. 민 감독은 “제작된 영화가 배리어 프리로 만들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 되고, 더 많은 영화가 장애를 넘어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가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손효림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