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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넘어 인간의 잔인함 말하고 싶었어요”

“위안부 문제 넘어 인간의 잔인함 말하고 싶었어요”

Posted August. 14, 2020 07:34   

Updated August. 14, 2020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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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잔인함의 주체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인간 전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과 남성의 폭력에 관해 폭넓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한국계 이민자 시인 에밀리 정민 윤(29)이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위안부 문제의 아픔과 폭력성을 다룬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사진) 출간을 기념한 간담회를 가졌다. 작가가 내한하긴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자가 격리 기간이어서 행사는 화상으로 진행됐다. 이 책은 2018년 미국의 대형 출판그룹인 하퍼콜린스에서 출간됐으며 미국 내 소수자 화법으로 역사 속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함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워싱턴포스트는 “마음을 사로잡는 데뷔작”이라고 평했다.

 초등학교 시절 캐나다로 이민을 간 뒤 미국에서 공부한 1990년대생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한국 역사의 아픔에 깊이 천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일본군의 위안부 문제는 어릴 때부터 충격적인 역사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의 다른 이들이 금시초문이란 반응을 보이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며 “미국 내 소수 인종으로서 우리의 훼손되고 잊혀진 이야기를 어떻게 공유하고 연대의식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이 분야의 시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 소녀는 잡힌 자갈이다. 그녀의 언어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기에 자갈이다. 소녀 한 줌. 땅이 자갈투성이다. 한국은 자갈이고 무덤이다.”(산문시 ‘일상의 불운’ 중)

 일본군의 위안부 문제와 관련 피해자들의 증언을 주된 질료로 삼았지만 그는 “이 책을 반일 민족주의적으로 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늘, 외국 아이보다 개들을 소중하게 여기는/나라에서, 오리건주 상원의원 후보가 난민들을/거부했다”(‘종 이론’) 같은 시에서처럼 아시아계 미국인이 현대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폭력의 경험을 함께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문에서 “책의 심장부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지만 넓게는 유해한 남성성, 군국주의, 제국주의, 전쟁, 인종차별, 언어에 의한 고통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인은 “비판적 시선이 없는 단순 재현은 폭력이나 트라우마의 반복일 뿐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시를 쓸 때 항상 스스로에게 ‘이 사람이 발언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대신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이 그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줄 것인가’를 질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독자들도 이런 윤리적 고민과 질문을 함께 던지면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문제의 담론을 이어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선희기자 teller@donga.com